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톈안먼 망루로 이동하고 있다. 신화통신 홈페이지 캡처중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등장하며 '북중러 연대'를 과시했다.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베이징 천안문 앞에서 시작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 푸틴 대통령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북중러 정상은 시 주석 내외가 고궁박물관 내 돤먼(端門) 남쪽 광장에서 외빈을 영접하고 기념촬영을 할 때 나란히 중심에 섰다. 이어 천안문 망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나란히 함께 걸으며 담소를 나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정상이 공식 석상에 나란히 참석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1959년 중국 국경절(건국기념일) 열병식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와 함께 천안문 망루에 선 지 66년 만이다.
전승절 행사에서 북·중·러 나란히 걸으며 담소…'신냉전' 다시?
이번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북한과 러시아가 나란히 참석해 연대를 과시한 것은 지난달 차례로 정상회담을 가지며 한미일 동맹을 확인했던 한국과 미국, 일본의 모습과 대비돼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일본과 미국을 차례로 방문해 한일,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경제 및 안보 등 분야와 관련해 협의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뜻을 모으며 한미일 삼각 동맹을 강조한 바 있다.
그 직후인 지난달 28일 북한은 이례적으로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했다. '은둔의 지도자'를 자처하던 김 위원장이 다자외교무대에 나선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전승절 행사에 푸틴 대통령도 참석을 결정하면서 일각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가 강화되며 '신냉전'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섣불리 '신냉전'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우선 과거 냉전 구도를 이끌었던 진영을 아우르는 이념이나 가치가 불분명하다. 현재로서는 각기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나라들이 전략적 이해를 갖고 연대를 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미국과 대립하면서도 아예 적대적인 관계,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들어서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경제적, 안보적으로 미국과 척을 지지 않아야 하는 요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역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러우 전쟁의 종식을 꾀하고 있는만큼 미국과 공개적인 대립각을 세우는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역시 '신냉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시 주석은 지난 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SCO 정상 이사회 제25차 회의 연설에서 미국을 직접 비판하지 않았다. 그는 우회적으로 미국을 언급하며 "올바른 2차대전 역사관을 발양하고 냉전적 사고방식과 진영 대결, 괴롭힘 행동에 반대해야 한다"고 해, 오히려 냉전 구도의 해석에 대한 경계도 비쳤다.
북중러 회담 없을 가능성 높아…"냉전 구도 경계, 명분도 없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푸틴, 시진핑, 김정은. 연합뉴스이날 시 주석을 중심으로 양 옆에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나란히 자리하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오찬 성격의 리셉션과 만찬 성격의 문화 공연 역시 세 정상이 모두 참석해 연대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관심을 끄는 것은 북러, 북중, 북중러 회담의 성사 여부다. 북한은 북중 정상회담을 갖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며 러시아와 밀월을 형성하는 동안 다소 껄끄러워 졌던 북중 관계를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또 경제 지원을 위한 논의도 오갈 수 있다.
다만 북중러 회담은 열릴 가능성이 낮다. 중국이 북한, 러시아와 묶여 신냉전 구도로 비춰지는데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 대립 프레임을 구축하기 보다는 실리를 찾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 회담을 가질 명분도 부족하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현재 (북중러 회담의 명분이 될만한)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관통하는 핵심 의제가 없다. 한미일 동맹을 강조할 때는 북한 문제의 해결이 명분이 됐고 이에 대해 중국도 불편함을 느낄지라도 뭐라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승절 행사를 통해 북중러의 동맹을 과시했더라도 결국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정부가 파고들만한 틈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 교수는 "중국도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며 오히려 한중 관계를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러시아 역시 경제적, 안보적으로 우리와의 양자관계 복원을 준비할 것"이라면서 "한중, 한러 양자관계의 개선을 통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공략하면 충분히 우리에게 외교적 기회가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