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AD406, ㈜슈아픽처스 제공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스포일러 주의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이란 어떻게 '가족'이 되는 걸까. '비밀일 수밖에'는 2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담긴 여섯 명의 개인, 세 쌍의 커플, 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했던 가족의 의미를 더욱 깊고 폭넓게 톺아보게 한다.
강원도 춘천, 고등학교 교사 정하(장영남)의 평온했던 일상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캐나다로 유학 중인 아들 진우(류경수)가 여자 친구 제니(스테파니 리)와 함께 예고도 없이 학교로 나타나고, 곧이어 캐나다에 있어야 할 제니의 부모까지 갑작스럽게 춘천에 도착한다.
숙소 예약 문제로 벌어진 소동 끝에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두 가족은 정하의 집에서 함께 머무르게 된다. 낯설고도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가운데, 서서히 드러나는 각자의 비밀들로 분위기는 점점 미묘해져 간다.
'철원기행' '초행'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던 김대환 감독이 가족을 조명한 영화 '비밀일 수밖에'로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가깝고도 먼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비밀일 수밖에'를 보다 보면 많이 떠오르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그렇다면 어떻게'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AD406, ㈜슈아픽처스 제공'비밀일 수밖에'는 개개인, 가족들, 그리고 가족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모여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에는 모두 여섯 명의 인물이 나온다. 영화는 두 명씩 비추거나 여섯 명을 모두 비추거나 때로는 한 명씩을 비춘다. 카메라가 인물을 이렇게 집합이나 개인으로 잡는 건 영화가 이야기하는 바에 닿아 있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사정, 영화의 제목처럼 '비밀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존재한다. 그건 가장 친밀한 관계라 부르는 가족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아들은 엄마에게, 딸은 남자 친구에게, 아빠는 딸에게, 이런 식으로 모두에게는 각자의 비밀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영화는 각각의 인물, 각 커플이나 가족, 두 가족을 비출 때마다 그런 저마다 감출 수밖에 없었던, 서로에게는 감춰야만 했던 것들을 관객들에게 드러낸다.
각 인물은 혼자 있을 때와 여럿이 있을 때,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결국 '가족'이라는 집합으로 묶여 있지만, 그 안에서도 개별적인 개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비슷한 문화와 가치관을 공유하더라도 절대 똑같은 존재일 수는 없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AD406, ㈜슈아픽처스 제공가족이란 그런 기묘한 집합이다. 가장 친밀하면서도 모든 것을 내보이는 존재이면서도, 각자만의 사정이 존재하고, 모든 것을 내보이지 못하는 관계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타인보다 모를 때도 있다.
그런 개별적인 존재들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놓이게 만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가 서로의 비밀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까지 보듬고 품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애초부터 타인이었던 서로 다른 존재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도, 이미 가족인 존재들이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르고 부딪히면서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렇게 가족이 되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관계가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고, 끊어졌다가도 이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너무 가깝기에 감추고 싶은 것도 있는 법이다. 가족이라도 비밀일 수밖에 없는 게 있다. 그 비밀은 영화에서처럼 때로는 가장 먼 곳에서부터 터져 나올 때도 있고, 가장 밝히기 싫을 때 밝혀질 때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 뒤로는 여러 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비밀일 수밖에' 속 여러 비밀과 감정들의 기저에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AD406, ㈜슈아픽처스 제공'비밀일 수밖에'를 보다 보면 그렇게 가족이 되어가고, 가족이란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 커플의 사연, 가족의 모습을 보며 나의 사정, 타인의 사연,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질문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는지 새삼 뒤돌아보게 된다.
가족이란 생각보다 단순하고 납작한 단어가 아니라 잔잔하면서도 그 안에 휘몰아치는 폭풍우부터 반짝이는 날까지 모두 담긴 단어다. 마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비밀일 수밖에'가 가진 힘이다.
'비밀일 수밖에'가 여러 의미로 재밌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봐왔던 장영남은 이번 작품에서 또 다른 결의 모습과 연기를 펼친다. 우리가 아직 장영남이란 배우의 모든 것을 본 것이 아니며, 아직 봐야 할 많은 모습이 남아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AD406, ㈜슈아픽처스 제공여기에 엄마가 숨겨 왔던 두 가지 비밀을 눈치채고 비로소 알게 된 순간 그리고 춘천을 떠나며 엄마에게 목을 긁적이다 손가락으로 엑스(X) 표시를 하는 류경수의 얼굴에는 아들로서 느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그렇다면 어떻게'와 모두 담기며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는다.
특히 박지일을 보면서 많은 관객이 가슴이 턱턱 막히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무례한 진상 아버지 역을 뛰어나게 연기했다. 그렇기에 박지일의 마지막 모습이 더 잔상으로 남는지 모르겠다.
이 밖에도 옥지영, 스테파니 리, 박지아까지 지금도 춘천에 그들이 존재할 것 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홀로 남은 그들의 얼굴에 담긴, 모두에게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이 담긴 그 순간들이 툭툭 감정을 건든다.
'비밀일 수밖에'는 잔잔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강렬한 에너지가 숨어 있다. 이는 전반적인 영화의 톤앤매너뿐 아니라 각 캐릭터의 면면이 그러하다. 영화와 캐릭터들이 가진 부드러움 속에 담겨 거세게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곱씹다 보면 관객들은 저마다의 의미에 도달할 것이다. 과연 김대환 감독이 다음에는 어떤 캐릭터와 에너지로 사람들에게 도달할지 궁금하다.
114분 상영, 9월 1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비밀일 수밖에' 포스터. ㈜AD406, ㈜슈아픽처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