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 모터쇼 IAA에서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인 XPENG의 AI 로봇 아이언이 전시돼있다. 연합뉴스중국 기업들이 잇따라 자체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강도 높은 대중국 AI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가 이어지자, 자체 기술 개발을 추구한 결과로 보인다.
中 빅테크 자체 AI 반도체 개발해 AI 모델 훈련 투입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1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빅테크 기업인 알리바바가 올해 초부터 소규모 AI 모델 훈련에 자체 반도체를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디인포메이션은 알리바바의 AI 반도체를 사용해본 직원들을 인용해 해당 반도체가 엔비디아의 'H20'과 경쟁할 만큼 충분히 우수하다고 전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규제에 맞춰 중국 판매용으로 설계한 저사양 AI 반도체이다.
디인포메이션은 또,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 바이두 역시 자체 설계한 '쿤룬(Kunlun) P800' 반도체를 이용해 자사 AI 모델 '어니'의 새 버전 훈련을 실험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알리바바. 연합뉴스로이터통신은 두 기업의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AI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 반도체에 의존해온 중국 기술 업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엔비디아의 중국 사업에 추가적인 타격을 줄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9일 알리바바가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동안 엔비디아에 의존해왔던 중국 빅테크 기업이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했다는 소식에 엔비디아의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美 수출 통제에 질렸다"…너도나도 AI 반도체 개발
이렇게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도 아닌 기업들이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것은 미국의 대중국 AI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때문이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인 지난 2022년 9월부터 엔비디아 'A100', 'H100' 등 고성능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통제했다.
대신, H20 같은 저사양 AI 반도체 수출만 허가됐는데 이마저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지난 4월부터 금지됐다. 비록 미중 무역협상 결과 H20의 수출이 다시 허용됐지만, 중국 기업들의 AI 반도체 수급 불확실성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이에따라 그동안 AI 모델 훈련·운용과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엔디비아의 AI 반도체를 구매해오던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고, 속속 성과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바이두. 연합뉴스이 가운데 중국 최대 IT 기업이자 미국의 1호 제재 중국 기업인 화웨이는 어느 순간부터 본업보다 AI 반도체 개발 소식으로 더 많이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화웨이는 고사양 AI 반도체로 알려진 어센트 '910B'와 '910C'을 자체 개발했으며, 910B의 경우 이미 상용화에 성공해 시중에 제품이 팔리고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엔비디아 H100을 능가하는 성능을 가진 어센드 '910D' 개발 초기 단계에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美 수출 통제가 살려낸 '중국판 엔비디아' 캠브리콘
여기다 미국 정부의 대중국 AI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는 고사직전이던 중국의 AI 반도체 설계 기업들에게도 반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는 캠브리콘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2016년 설립된 캠브리콘은 설립 이후 막대한 연구개발비 투입으로 인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중국 기업들도 이미 검증된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를 선호해 캠브리콘의 제품을 외면했다.
설상가상으로 주가까지 곤두박질 치면서 투자자들까지 모두 떠나버린 위기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가 시작됐고,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중국 기업들이 캠브리콘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 정부의 제재로 큰 피해를 본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가 캠브리콘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바이트댄스는 캠브리콘의 최신 AI 반도체 '쓰위안 590'을 2만개 넘게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캠브리콘은 그해 4분기 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가 없었다면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엔비디아의 검증된 AI 반도체를 쓰고 있었을 것이고, 만년 적자에 투자자들까지 떠난 캠브리콘은 그대로 주저앉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줬다.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 조치를 비판해온 젠슨황 엔비디아 CEO의 "중국의 AI 시장은 엔비디아가 있든 없든 발전할 것"이라는 발언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