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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년 만의 최악 가뭄' 메마른 강릉, 무너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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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25년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가뭄은 단순한 지역적 재난을 넘어 대한민국이 기후위기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 강력한 경고장이었다. 이번 강릉 지역 가뭄은 1911년 기상 관측 이래 1917년에 이어 108년 만의 두번째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여파는 동해안 대표 관광도시의 일상을 마비시켰고 전국 최초로 '가뭄'을 이유로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는 초유의 상황을 낳았다.

강릉 시민들은 극한의 일상을 견디며 '생존'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했다. 긴급 급수로 연명하다 생활용수 적정성 논란으로 24년간 닫혀 있던 평창 도암댐 물까지 끌어 들이고 뒤늦은 가을비가 사태를 가까스로 수습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대응과 구조적 한계는 강릉을 넘어 모두에게 큰 숙제를 안겼다.

강원CBS와 강원영동CBS는 기획보도 <물의 경고>를 통해 '강릉 가뭄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의 실체를 되짚고 앞으로의 재난 대응 시스템과 물 관리 정책, 그리고 시민의 삶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강원CBS·강원영동CBS 기획보도 <물의 경고> 1편 메마른 강릉, 무너진 일상
강릉 43일간 비 없는 일상, 가뭄 이유 최초 국가재난사태 선포
주민 배급 생수에 의존, 산모들 강릉 떠나 타 지역서 출산, 지역 경제 붕괴 위기

극한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강릉 오봉저수지. 전영래 기자극한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강릉 오봉저수지. 전영래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108년 만의 최악 가뭄' 메마른 강릉, 무너진 일상
② 경고는 있었지만, 대책은 없었다
③ '목마른 한국' 가뭄은 현재 진행형
④ 물을 지켜낸 도시들 '한국의 해법은'
⑤ '더 센 가뭄' 기후위기 극복 해결책

108년 만의 '최악 가뭄' 23일간의 악몽

    
행정안전부는 강릉시의 가뭄 재난 위험이 해소 및 안정화됨에 따라 국가재난사태를 9월 22일 오후 6시를 기해 해제했다. 지난 8월 30일 재난사태가 선포된 지 23일 만이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안정적 수원 확보와 추석 연휴 지역경제 위축 우려를 고려한 조치다. 소방청 국가소방동원령과 환경부 가뭄 예·경보 단계도 함께 해제되면서 강릉은 평시 가뭄 관리체계로 전환됐다.

23일 0시 기준 강릉지역 생활용수의 87%를 담당하는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61.1%. 141일 이상 공급 가능한 수량을 확보하면서 가뭄 우려를 한시름 놓게 됐다.

이번 가뭄 사태는 지난 6월 30일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심각' 단계인 40% 선이 무너지면서 본격화 됐다. 이후 비구름대가 태백산맥을 넘지 못하면서 43일간 비 없는 일상이 됐다. 강릉시는 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 발령을 시작으로 제한급수 조치를 점차 강화했다.

저수율이 15%까지 추락하자 정부는 지난달 30일 사상 처음으로 가뭄을 이유로 한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자연재난으로 재난사태가 선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 5월 양양 산불, 2007년 12월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19년 4월 동해안 산불, 2022년 3월 경북 울진·삼척 산불 등은 사회재난으로 분류된 재난사태 선포 사례다.

국가소방동원령 발령 후 전국에서 급수 차량과 군 병력이 모여 홍제정수장과 오봉저수지에 물을 실어 나른 끝에 모인 물의 양은 21만 5천톤. 제한급수 이후 강릉 주민 하루 사용량(약 7만 톤)을 고려하면 사흘치에 불과했다.

오봉저수지는 결국 최저 11.5%까지 떨어졌고, 대형 유류탱크 화재 등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특수 소방장비인 '대용량포 방사시스템'까지 동원돼 하루 1만 톤의 물을 실어 날라야 했다.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겨졌던 평창 도암댐은 지역 감정과 수질 문제라는 오랜 갈등 끝에 지난 20일 24년 만에 수문을 열었다.

'가뭄이 바꾼 일상' 재난에 직면한 시민들

제한급수 시행 이후 강릉 초당동의 한 아파트 욕조 물이 흙탕물로 변해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제한급수 시행 이후 강릉 초당동의 한 아파트 욕조 물이 흙탕물로 변해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
강릉 초당동 주민 정모(57)씨는 단수 조치가 시작된 뒤 2주 동안 생수에 의존해 생활했다. 매일 아침 오전 7시부터 30분간 급수시간 수도꼭지를 틀면 흙탕물, 심지어 정체 모를 푸른빛 물까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정씨는 "차라리 쓰지 않는 게 낫겠다"며 "급수 시간을 늘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쓸 수 있는 물을 주는 게 먼저"라고 호소했다.

가뭄은 주민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저수조 100톤 이상을 보유한 대수용가 123곳, 4만 5천여 세대에 대한 제한급수가 시작된 이후 아파트 단지 내에는 시에서 배부한 2리터짜리 물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일상화 됐다. 강릉시에 따르면 전 시민 배부를 위해 확보한 병입수(생수)는 873만 병으로 집계됐다.

생수를 가득 채운 택배 차량들이 지역 곳곳을 누비며 주문한 물을 배송하는 모습도 쉽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제한급수 시행 이후 강릉의 한 아파트에 쌓인 빨랫감. 구본호 기자제한급수 시행 이후 강릉의 한 아파트에 쌓인 빨랫감. 구본호 기자
제한 급수를 겪은 아파트 어린이집 급식은 간편 비조리식을 바뀌었고,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식기마다 비닐이 씌워졌다.

배변 훈련을 끝낸 아이들은 다시 기저귀를 차야했다. 한 한부모는 "아이들이 기저귀와 속옷을 혼동해 실수가 잦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발달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출산을 앞둔 산모들은 강릉을 떠났다. 최근 강릉의 한 산부인과에서는 임신 30~34주 산모 3명이 경기도와 충청도 친정이 있는 병원으로 전원했다. 출산도 걱정이지만 태어난 자녀의 빨래와 젖병 소독 등 많은 물이 필요한데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어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게 산모들의 절박한 처지였다.

산모들은 "물 없이는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며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차라리 피난을 가야 하나"는 글이 이어졌다.

동해안 관광도시를 대표하던 강릉지역 경기도 직격탄을 맞았다. 식당들은 제한 급수에 문을 닫았고 일부 식당들은 '물 절약'에 동참하기 위해 영업을 중단했다.

성수기 특수를 기대했던 주요 숙박시설 예약은 줄줄이 취소됐다. 강릉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물이 안나온다는데 돈 내고 오고 싶어하는 관광객이 어디있겠냐"라며 "작년하고만 비교해도 예약률이 5분의 1수준이고 예약 문의조차 끊긴 지 오래"라고 호소했다.

대체 수원 확보 지연 '늑장 행정' 도마 위

11일 오전 한병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가뭄 대응 예산 협의를 하고 있는 김홍규 강릉시장. 전영래 기자11일 오전 한병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가뭄 대응 예산 협의를 하고 있는 김홍규 강릉시장. 전영래 기자
오봉저수지라는 단일 수원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대체 수원 확보를 위한 선제적 행정 대응의 무능함은 재난으로 번졌다.

강릉은 지역적으로 경사가 높아 빗물 저장이 어렵고, 수자원이 모일 수 없는 취약 구조로 댐을 건설할 수 있는 부지도 없는 만큼 대체 수원 확보의 필요성이 어느 곳 보다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본격화된 뒤 강릉시는 지난달 20일 하루 1만 톤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구산농보 간이양수장을 생활용수로 전환하기 위한 긴급 공사에 부랴부랴 돌입했다. 재난안전특별교부세 14억 원을 투입해 2㎞ 도수관로를 새로 연결하는 사업이었지만, 이미 시민 불편이 극에 달한 뒤였다.

장기 대책 역시 시급한 가뭄을 해결하기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강릉시는 총 250억 원을 들여 연곡 지하댐 건설을 추진 중이지만 2027년 완공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도암댐 방류 중단 이후 취수원 다변화가 절실했음에도 저수율이 곤두박질 칠 때마다 비와 단기 급수에 의존했을 뿐 새로운 수원 확보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홍규 시장의 사후 대처도 지역 주민들이 분노에 불을 지폈다. 지난달 30일 이재명 대통령이 강릉을 방문했을 당시 김 시장은 "9월엔 비가 올 것이라고 (제가)굳게 믿고 있다"고 말하면서 마치 대책이 없는 모습으로 비춰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시장이 요청한 국비 500억 원의 소요 내역과 '원수 확보 비용'에 대한 대통령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강릉시민행동 운영자 SNS 게시글 캡처강릉시민행동 운영자 SNS 게시글 캡처
가뭄 관련 허위 정보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시장이 내부 직원들에게 댓글을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강릉지역 시민단체에서 제기되며 비판은 극에 달했다.
 
강릉시민행동은 지난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김홍규 시장은 지난 8월 29일 시청에서 여성 공무원 60여명이 참석한 긴급회의에서 가뭄 및 물 부족과 관련해 언론과 인터넷에서 잘못된 정보와 비판적인 내용이 많다"며 "이는 시민들을 자극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직원들이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달 30일 행정 내부망인 강릉시 새올시스템 '칭찬합시다' 게시판으로 김 시장을 칭찬하는 제목의 글과 100여 개의 칭찬 댓글이 달린 내용을 강릉시민행동이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강릉시는 "시장은 어떤 경우에도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으며,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견 활동에 개입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굳게 잠겼던 '평창 도암댐' 24년 만의 개방

강원 강릉시 성산면 남대천 상류에 있는 도암댐 방류구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 연합뉴스강원 강릉시 성산면 남대천 상류에 있는 도암댐 방류구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수질 문제와 지역 간 갈등, 생태 환경의 문제 등 정치·사회적 불신으로 방류 답보 상태에 놓였던 '평창 도암댐'은 2001년 이후 24년 만인 지난 20일 문을 열었다.

'임시 방류'라는 제한을 두고 하루 1만 톤의 비상 방류수가 남대천으로 흘러들어가 임시 취수장을 거쳐 홍제정수장에 공급되는 방식이다.

도암댐 비상 방류수는 우선 관로에 있는 15만 톤을 다 받은 뒤, 방류 중단에 대해서는 11명의 민·관·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강릉시수질검증위원회 등과 협의를 거쳐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수질검증위는 수질 검증 등 적합 여부를 검토하고 가뭄 해소 시 방류 중단 시기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평창 대관령면 남한강 최상류 송천에 건설된 5100만톤 규모의 유역변경식 발전소인 도암댐은 1991년 준공 이후 석회암 지대 수질 악화 문제와 녹조, 목장 분뇨, 등 오폐수가 유입되는 '악재'가 겹치면서 결국 10년 만에 발전·방류를 중단했다.

2009년 정선군이 상지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도암댐 하류 하천수계 생태계 정밀조사' 용역 결과 하류 수역 피해액은 그 당시에만 1조 589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댐 방류를 극렬히 반대해왔던 정선지역 주민들은 '생존 위기'를 겪고 있는 가뭄 심각성을 고려해 한시적 물 사용을 전제로 방류에 동의했다.

환경부는 최근 댐 도수관로 및 도암댐 용수 수질 분석 결과 강릉시 정수장에서 처리가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강릉시도 지난 20일 도암댐 방류 이후 채수한 방류수에 대해 수소이온농도, 용존산소, 총유기탄소 등 당일 측정이 가능한 8개 항목 가운데 총대장균군을 제외한 7개 항목 분석 결과 정수 처리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비가 오기 전(위)과 비 온 뒤 오봉저수지(아래)의 모습. 연합뉴스비가 오기 전(위)과 비 온 뒤 오봉저수지(아래)의 모습. 연합뉴스
방류 시작 소식에 최근 내린 많은 비로 차오른 오봉저수지를 보기 위한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 주민은 갈라진 저수지 바닥 한 켠에 보였던 '말구리재'가 머리만 빼곡히 보일 정도로 물이 찬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70대 주민 김모씨는 "저기 섬같이 생긴 것(말구리재)이 밑바닥 중 제일 높은데 저기가 잠겨야 어느 정도 물이 찼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그래도 이렇게 직접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니 가슴까지 벅차다. 내친 김에 오늘 아예 잠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과 발걸음을 함께한 50대 여성 이모씨는 "어제는 아파트 제한 급수도 풀리고, 오늘은 저수율도 40%를 훌쩍 넘겼다는 뉴스를 접했다. 주민들의 일상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가뭄이 해갈됐으면 좋겠다"며 저수지를 한참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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