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으로도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이 22년의 침묵을 깨고 천년 고도 경주의 밤하늘에 넓고 깊게 울려 퍼졌다.
"덩……덩……덩………"
지난 24일 오후 7시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마당. 서울 보신각에서 수십 년간 종을 쳐온 신철민 종지기와 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가 길이 187㎝, 무게 100㎏이 넘는 당목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이 힘차게 내리칠 때마다 성덕대왕신종은 폭발적인 중저음을 내뿜다 자장가 같은 중저음으로 바뀌기를 반복했다.
장엄한 종소리가 12번에 걸쳐 가을밤의 습기를 가르며 널리 퍼져 나가자 박물관 마당에 모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주낙영 경주시장 771명의 시민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동작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국립경주박물관이 2003년 이후 22년 만에 대중에 공개한 '성덕대왕신종'의 타음(打音) 조사 현장이다.
성덕대왕신종 타종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경주박물관 제공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최대의 거종(巨鐘)으로 제작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시대 범종이다.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이 부친 성덕왕(재위 702~737)을 위해 제작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경덕왕을 이은 혜공왕(재위 765~780)이 즉위 7년 만인 771년 완성했다. 높이는 약 3.66m, 무게는 18.9톤에 달한다.
종의 몸체에는 천여 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당시 신라 시대의 사상과 왕실의 염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아기 제물을 넣어 다시 주조했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더 친숙하다.
종소리는 맑고 장중해 지금도 '천년의 울림'으로 불리지만 경주박물관은 유물 보존을 위해 1992년부터 정기 타종을 중단했으며, 이후 제한적으로만 타음 조사를 진행해왔다.
타음 조사 현장을 공개하는 건 2003년 이후 22년 만이다. 박물관은 종 완성 연도에 맞춰 771명의 국민을 초대했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를 소개하고 있다. 경주박물관 제공경주박물관은 이번 타음 공개를 계기로 2029년까지 종의 상태를 점검하는 '5년 정밀 조사'에 들어간다. 종소리의 주파수 변화, 맥놀이 현상, 표면 부식 여부 등 과학적 진단을 통해 구조적 결함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특히 개폐형 실내 전시관인 신종관(神鍾館) 건립도 추진한다. 종을 매달지 않고 바닥에 내려 놓아 용뉴(龍鈕, 종 꼭대기 장식)를 보호하고, 관람객이 가까이에서 종의 상부와 문양을 볼 수 있도록 만들 방침이다.
실제로 경주지역은 2016년 지진과 태풍 차바, 2022년 태풍 힌남노 등 잇따른 자연재해에 큰 피해를 입어 야외에 노출해 전시 중인 성덕대왕신종의 안전 관리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높아졌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성덕대왕신종은 한국에서 가장 큰 종이자 소리를 낼 수 있는 종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라며 "신종관을 건립한 후에는 국민들게 매년 한 번씩 종의 원음을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