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제주시 모처에서 만난 불법재판 의혹 사건 피해자 현은정 씨. 기자의 질문에 고민에 잠긴 모습. 이창준 기자"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원인 모를 무력감 때문에…."
17일 오전 제주시 모처에서 만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현은정 씨는 취재진에게 이같이 토로했다. 그녀는 농민인 현진희 씨와 함께 제주지방법원 A 부장판사의 불법재판 의혹 사건 사법 피해자다. 공포 분위기 속에서 첫 공판에 법정구속 됐다가 5개월여 만인 지난달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녀는 제주교도소에서 나온 지 한 달이 넘도록 자신을 짓누르는 무력감의 이유로 "최근에 진희도 말했지만 그날 재판에서 인간 존엄성이 말살됐기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2023년 3월 제주교도소 앞에서 공안탄압을 규탄하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피고인들이 탄 호송차를 막아서는 과정에서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다. 1심에서는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을 받았지만, 지난 3월 항소심 재판장인 A 부장판사가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시켰다.
당시 A 부장판사는 경위들을 법정 곳곳에 세운 뒤 방청석과 피고인석을 향해 "어떠한 발언도 하지 마라, 한숨도 쉬지 마라. 탄식도 하지 마라. 이를 어기면 구속시키겠다"고 협박하고, 배석판사 합의절차 없이 판결을 선고하는 등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현은정 씨는 "A 부장판사가 소리치기 전 경위들이 우르르 들어왔고 법정 안은 순식간에 긴장감과 공포로 뒤덮였어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옆에 앉아 있던 변호사와도 눈을 마주칠 수 없었어요. 그 역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에요"라고 했다.
공안탄압 규탄 기자회견. 고상현 기자특히 그날 첫 공판에다가 배석판사와의 합의 절차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선고기일을 정하고 재판이 마무리될 줄 알았지만, 즉일 선고가 이뤄지면서 당혹스러웠다고 기억했다.
그녀는 "제주교도소로 호송되는 순간 불안이 극에 달했어요. 항소심 첫 공판이라 당연히 집에 갈 줄 알아서 가족이나 지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요. 호송차 안에서 가족과 직장은 어떡하지, 수술 받은 부위 진료는 어떡하지 여러 걱정으로 불안감이 몰려왔어요"라고 토로했다.
무더위 속 4평 남짓한 방에 9명이 함께 지내는 열악한 수감생활. 그렇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정신적 고통이었다. 부당한 재판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괴로웠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한 그는 이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9월 현은정, 현진희 씨가 보석으로 석방되는 장면. 독자 제공최근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알려진 A 부장판사의 근무시간 음주소동에 대해서는 "우리처럼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근무시간에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은 상상도 못해요. 그런데 일반인에게 강력한 사법 권력을 휘두르는 A 부장판사는 왜 징계도 없는 것인지"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녀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알고 있어요. 교도소에 있어 보니 다들 A 부장판사를 두려워했어요. 법의 원칙이 판사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한편 또 다른 사법 피해자인 현진희 씨는 당시 재판에서 겪은 충격과 트라우마로 취재에 응하지 못했고, 여전히 깊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