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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50만원에 2400만원 더…엄마는 아들 구할 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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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호강시켜 줄게" 떠난 이후 연락 두절된 아들
'몸값' 3천불에 팔려…수갑 찬 채로 고문 당하기도
극적 구출 이후 유치장으로…또다른 지옥의 시작
샤워·폰 사용 등 행동할 때마다 '팁' 경찰에 내야
150만원 보냈지만 "2400만원 줘야" 말에 절망

어머니 이씨와 아들 구씨의 마지막 대화 내용 일부 캡처.어머니 이씨와 아들 구씨의 마지막 대화 내용 일부 캡처.
"엄마, 호강시켜 줄게."

지난해 6월 캄보디아로 떠난 큰아들은 1년 6개월째 돌아오지 못했다. 인천 계양구의 한 빌라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 이가연(61. 가명)씨는 캄보디아에 구금돼 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내내 눈물을 흘렸다.

지난 5월 중순까지만 해도 잘 연락했던 아들이었다. 어려운 살림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을 해보겠다며 캄보디아까지 간다는 게 걱정이 앞섰지만, 서울권 4년제 대학을 다닌 똑똑한 아이여서 믿어주기로 했다. 가연씨는 마르지 않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고, 장학금도 받고 다녔다. 든든한 아들이었다"고 자랑했다.

그런 가연씨의 아들 구인혁(35·가명)씨는 캄보디아 범죄 단지로 납치돼 5개월간 감금과 고문을 당하다가 지난달 극적으로 구출됐다. 구씨는 시아누크빌의 한 경찰서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아들이 구출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살았구나" 싶었다. 다시 아들과 연락이 닿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도 잠시, 이씨는 숨이 턱 막혔다. 현지 경찰서 유치장은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곳이었다.

'뒷돈'이라도 내고 데려올 수 있다면…발목 잡은 형편

가연씨는 집 근처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한다. 한 달 벌이는 몇 십만 원 남짓. 매달 나가는 빚과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일하면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2년 전엔 오른쪽 어깨 인대 다섯 군데가 파열돼 수술을 받았다.

알코올 중독이던 남편과는 10여 년 전 이혼했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이씨와 두 아들을 때렸다고. 가연씨는 "소중한 두 아들을 외롭고 힘들게 키웠다"며 "지금은 나 말곤 아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들이 한국으로 송환되려면 최소 몇 개월은 걸린다는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맨밥에 야채 몇 개 얹은 유치장 밥으로 버텨야 할 아들을 생각하니 속은 타들어갔다. 오랜 감금과 구금 생활로 피부병이 심해진 아들의 다리 사진을 봤을 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오랜 감금과 구금생활로 피부질환이 심해진 구씨의 다리.오랜 감금과 구금생활로 피부질환이 심해진 구씨의 다리.
현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아들에게 약 3주 동안 세 차례, 총 150만 원을 보냈다. 이조차 이웃들에게 빌려 겨우겨우 마련한 돈이었다. 하지만 그 돈으로 끝이 아니었다.

현지 사람들로부터 "경찰에게 약 2400만 원을 주면 바로 추방시켜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브로커들도 난데없이 연락이 왔다.  "어머님, 저한테 돈 주시면 제가 아드님 빨리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드릴게요"라는 말은 가연씨의 가슴을 흔들었다. 1천만 원부터 5천만 원까지, 그게 뒷돈일지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5개월 동안 감금당하며 온갖 고문을 당했을 아들을 생각하면 못 할 게 없었다.

가연씨는 "당연히 하고 싶었지, 돈이 없으니까 못했다"며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인데, 구조되자마자 그냥 얼마든 돈을 줘버리고 빼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픈 몸을 이끌고 식당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연씨에게 그런 돈은 언감생심이었다.

3천불에 팔려 5개월간 단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수갑

당시 포이펫 범죄단지에 감금됐던 구씨의 모습. 이씨는 해당 사진으로 연락이 두절됐던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됐다.당시 포이펫 범죄단지에 감금됐던 구씨의 모습. 이씨는 해당 사진으로 연락이 두절됐던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됐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인혁씨와 연락이 닿았다. 주장에 따르면, 인혁씨는 지난해 6월 캄보디아로 향했다. IT 관련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을 돌아다니면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이번엔 함께 간 동료와 함께 캄보디아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개발하려고 했다. 잘 되나 싶었던 사업은 금세 좌초됐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던 찰나에 프놈펜에 함께 살던 여자친구를 통해 한국인 남성 한 명을 알게 됐다. 그는 인혁씨의 IT 관련 지식을 쓸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해낸 것 없이 어머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는 인혁씨는 그를 따라 또 다른 중국인과 인연을 맺으면서 지옥이 시작됐다.

"나를 왜 가두는 거냐"고 따지자, 조직원은 "그럼 3천 불(약 430만 원)을 내고 가라"고 했다. 그제야 인혁씨는 자신이 팔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3천 불은 그의 몸값이었다.


인혁씨는 국경 근처 포이펫의 범죄 단지 안으로 끌려갔고, 감금 생활이 시작됐다. 조직원들은 인혁씨에게 보이스피싱 사기 대본을 줬다. 외우지 못하면 전기 고문을 당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일할 땐 발에, 일이 끝나면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하루에도 몇번 씩이고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혁씨는 "감금당해 생활했던 5개월 동안 24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수갑을 풀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8월 처음으로 구조 요청을 했지만, 그 사실을 알아챈 조직원들은 그를 다른 장소로 빼돌렸다. 인혁씨는 검정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트렁크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졌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던 인혁씨가 도착한 곳은 범죄단지 '웬치'가 몰려 있는 시아누크빌. 이번엔 작은 호텔방에 갇혔다. 조직원들은 한 번만 더 신고하면 "관에 넣어 묻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급기야 가족 명의 통장까지 요구했다. 이씨는 "어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라 한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니 그들이 포기했다"며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듯이 전부 빼먹히는 게 납치와 감금"이라고 말했다.

9월 두 번째 신고 끝에 현지 경찰이 숙소로 들이닥쳤고 지난달 29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드디어 나가는구나"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인혁씨는 모든 물건을 다 빼앗기고 경찰서에 갇혔다. 그에게는 새로운 감금의 시작이었다.

감금 이어 구금…'돈' 없이 안녕 못한 유치장

구씨가 갇힌 이민청 유치장의 내부 모습.구씨가 갇힌 이민청 유치장의 내부 모습.
인혁씨는 유치장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현지 경찰은 구금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일상생활 거의 모든 것에서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었다.

밥을 시켜 먹어도 5달러, 샤워를 하려 해도 5달러의 팁을 요구했다. 물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는데 잠시 깨끗한 물이 나오면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낮에 휴대전화를 쓰려면 돈을 내야 했고, 밤에는 휴대전화를 다시 걷어갔다.

인혁씨와 함께 유치장 갇혔던 중국인들은 경찰에 2만 불(약 2800만 원)을 내고 한두 명씩 떠나갔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그는 어머니가 어렵게 보낸 150만 원으로 3주째 버텨왔다.

지금도 5평 남짓한 방에 스무 명이 다닥다닥 붙어 지낸다. 감금과 고문의 트라우마에 아직도 온몸이 아프다. 인혁씨는 "어머니한테 돈을 받고 있지만, 불법 체류비를 해결하지 못하면 교도소에 가는 걸로 알고 있다"며 "한국에 계신 어머니 말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많이 슬프다"고 고개를 떨궜다.

가연씨는 아들이 보내온 사진을 차마 보지 못하고 모두 지웠다고 했다. "엄마, 괴롭다. 한국에 오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가연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이 무사히 송환되기 전까지 약이라도 잘 챙겨 먹을 정도의 돈을 마련하는 정도다.

며칠 전 인혁씨는 이민청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최근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강력범죄가 논란이 되면서 우리 정부의 강력한 대응과 캄보디아 당국의 적극적인 단속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막막하다. 이씨는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내야 하는 불법체류비가 700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그 돈은 또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송환까지 아들 차례를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도 절망스럽다.

가연씨는 "이번에 송환될 때 우리 아들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들이 있던 경찰서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며 "와서 벌받아야한다면 벌받아도 괜찮으니, 제발 한국에만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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