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가 2035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2018년 대비 최소 50% 이상으로 제안하자 산업계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여러 산업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목표치로서, 규제가 연동되면 막대한 비용 부담 등으로 인한 충격이 불가피하며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비판의 골자다.
정부, 2018년 대비 '50~60%' 또는 '53~60%' 감축안 제시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 회관에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 공청회를 열고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0~60%' 또는 '53~60%'로 감축하는 2개안을 제시했다. 최종 결정은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이뤄지며, 이후 유엔에 제출된다
그간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검토해왔던 여러 감축 목표치 가운데 가장 낮았던 48%로 설정되더라도 각종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막판 제안격인 2개안의 하한선은 그보다 2~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석유화학·철강 업계 등 "무리한 감축안…업황 더 악화될 것" 반발 기류
연합뉴스이에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자동차 부품, 반도체 등 광범위한 업계에서는 즉각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무리한 감축안"이라며 "감축 목표를 맞추려면 현실적으로 공장 가동률 자체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힘든 업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을 줄이고 이를 초과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배출권 거래제가 NDC 달성 차원에서 강화되면 그에 따른 비용 부담도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철강업계 관계자도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수소환원제철인데, 상용화 시점은 2037년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그 이전인 2035년까지 제시된 목표를 어떻게 맞춰서 현실화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철강협회, 한국시멘트협회, 한국화학섬유협회 등 7개 협회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기존에 검토되던) 48% 감축안도 달성을 위해서라면 탄소 저감 투자를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 저탄소 시장 창출, 무탄소 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선결될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 수준의 목표치를 설정해 달라고 지난 4일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자동차·부품·반도체 업계서도 "어떡하나"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업계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2030년 NDC(2018년 대비 40% 감축)도 달성이 어려운 상황인데, 목표치가 급격히 또 올라가면 부품업계나 중소 완성차 제작사들은 더 힘들어 진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많은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사실상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업체인데, 제대로 된 인센티브도 없이 무공해차로 전환하라는 식의 이런 계획을 내면 어떡하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와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등도 지난 3일 수송 부문 무공해차 보급 목표의 현실적 조정과 산업·고용 충격 최소화를 위한 지원정책 강화를 촉구하는 공동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정부의 2035 NDC 시나리오는 전기차 중심의 급격한 전환에 치중돼 있다"며 무공해차 등록 목표를 낮추고 자율주행·지능형교통시스템(ITS)·물류효율화 등 교통체계 개선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재생에너지 등 탄탄한 인프라 구축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시된 온실가스 배출 감축안은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산업계 전문가 "의지나 선언만으로는 현실적인 에너지 전환 어려워"
정부의 2개의 최종 제안이 나온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자원경제학회와 공동으로 '산업측면에서 바라본 에너지전환정책의 문제점과 지원책 세미나'를 열어 상황을 진단했다. 한국자원경제학회장인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2035 NDC 상향 조정은 국가 기간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다소비업종은 기술적 한계와 투자 여력의 제약 속에 감축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우리 산업의 80%는 철강과 석유화학 등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산업으로 구성돼 있다"며 "단순한 감축 의지나 기술 선언만으로는 현실적인 (에너지)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