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연합뉴스연세대학교에 이어 서울대학교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답을 작성한 부정행위가 적발되면서 대학가에 'AI 부정행위 주의보'가 켜졌다. 문제가 불거진 대학들은 "학생 개인의 일탈"이라는 입장이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AI를 안 쓰면 오히려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만연한 일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AI 활용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기존 규칙과 실제 학습 환경이 충돌한 사례"로 보며, 시험과 수업 방식을 AI 시대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연세대도, 서울대도…AI 부정행위 적발
지난달 연세대에서는 비대면 대형 강의 시험에서 생성형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약 600명이 수강하는 '자연어 처리와 챗GPT' 비대면 강의 중간고사에서 50명에 달하는 학생이 AI를 사용해 답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비슷한 일은 최근 서울대에서도 발생했다. 지난달 치러진 교양 과목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이 AI를 이용해 문제풀이를 했다가 적발됐다. 해당 강의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생들이 참여하는 30여 명 규모의 대면 강의로 알려졌다.
연세대 관계자는 "연세대에는 AI를 비롯해 비대면 수업에 관한 지침이 마련돼 있다"며 "이번 문제는 문제의식 없이 치팅(부정행위)을 저지른 학생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컨닝이라는 건 대면으로 (시험을) 보나, 비대면으로 보나 늘 있었던 일이지 않느냐"며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한 학생들의 문제인데, 연세대 학생들의 대다수의 일인 것처럼 비춰질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측은 지난 12일 "해당 분반(부정행위가 아뤄진 반)은 재시험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며 "다만, 집단적 부정행위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개인적 일탈로 판단하고 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직하면 나만 손해 본다는 느낌"
전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3학년 김모(26)씨는 "보통 비대면 시험은 응시하는 학생의 모습과 화면을 같이 찍어야 되는데 프레임 밖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허술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며 "(평가 방식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만 너무 정직하면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지금 공론화가 된 것 뿐이지 많이 벌어졌던 일이고,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라고 토로했다.
학생회관 앞에서 만난 교육학과 양유민(21씨)씨는 "이번 부정행위는 잘못한 거다. 진짜 부끄러워 죽겠다. 안 되는 일이다"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육학에서도 AI를 활용하는 게 추세인지라, 실제로 학습을 많이 하고 있는 만큼 교수님들의 평가 체제 자체가 AI 시대에 맞게 좀 변화되어야 하는 시점인 건 맞다"고 말했다.
캠퍼스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있던 경제학과 박지오(21)씨는 "부정행위를 했다면 그 책임을 응당 지는 게 학생이자 성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수가 AI 사용을 잡아내지 않는다고 전제하면, 99명이 ChatGPT로 만점 받고 1명만 정직하게 봤을 때 점수를 받든 못 받든 억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신촌캠퍼스 게시판에는 "솔직히 AI 안 쓰면 바보 아니냐?"는 제목의 글이 지난 10일 올라오기도 했다. 작성자는 "GPT 킬러(생성형 AI 탐지 프로그램)로 잡지도 못하고, 정직하게 공부해서 푼 것보다 AI 딱 돌린 게 점수가 더 잘 나오는데, 이거 안 쓰면 오히려 손해임"이라고 적었다. 이어 "전에 공부해서 풀었는데 챗 GPT 쓴 애랑 점수 같은 것 보고 더 이상 쓸데없는 양심은 지키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지난 10일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연세대 신촌캠퍼스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 화면 갈무리해당 게시글 댓글에는 "나도 과제나, 몇몇 과목은 시험 볼 때 그냥 쓰긴 한다", "당연하다" 등 공감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 9일엔 "쉽게 치팅(부정행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놔서 치팅한 사람들은 쉽게 고득점하고 (안 한) 나는 불이익을 볼 텐데 그러면 치팅하게 되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강한 유인 아님?"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기존 규칙으론 못 막아"…AI 시대 평가방식 재설계 요구
AI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이 수업 방식과 평가 체계 전반을 AI시대에 맞도록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장은 이번 사태를 "AI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성장통"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앞으로는 AI 없이 학습·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대학도 AI를 쓰는 법과 쓰지 않는 법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며 "평가 역시 AI 활용을 전제로 한 방식과 AI를 배제하는 방식을 명확히 구분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소장은 단순한 'AI 부정행위 탐지 기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검색하거나 남에게 물어보는 데 20~30초가 걸렸지만 지금은 2~3초면 답이 나온다"며 "온라인 시험 환경은 그대로인데 유혹의 강도만 압도적으로 커졌다. 대학이 이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수 재교육과 교과목별 세부 가이드라인 정비 등을 통해 평가 구조를 AI 시대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인공지능학과 백은경 교수는 이번 사안을 "AI 이전의 규칙과 프레임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위에 AI만 얹어 통제하려다 생긴 충돌"로 진단했다. 그는 "과목·평가 목적별로 AI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지 명확히 설정하고, 사용했을 경우 어떤 질문을 넣었는지·어떤 답을 참고했는지·어떻게 수정했는지까지 명시하게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AI를 쓰더라도 입력·수정 과정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AI 사용 과정' 자체가 평가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백 교수는 이제 대학 내부 시스템의 적응 속도가 관건이라고 봤다. 백 교수는 "AI 변화를 수업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학생에게 쓰는 법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있는 반면, 빠른 기술 변화에 어려움을 겪는 교수들도 있다"며 "급하게 만든 원론적 지침만으로는 AI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면서 "교수 재교육과 평가 체계 개편 등 대학 차원의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