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중국 고서 노자에는 군주와 정치를 4단계 수준으로 나누고 있다.
가장 나쁜 군주는 '모지'(侮之), 즉 백성으로부터 욕을 먹는 정치다.
그 다음으로 나쁜 군주는 '외지'(畏之)로, 백성이 두려워 하는 정치다.
그 윗 단계 군주는 '친이예지'(親而譽之)니 백성이 친근히 여기고 칭송하는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노자가 꼽은 가장 좋은 군주는 '하지유지'(下知有之). 백성이 왕의 존재만 알뿐 그 이름이나 하는 일은 전혀 모르는 정치다.
지금은 왕정이 아닌 공화정이니 군주나 왕 대신 정치권을 대입해도 노자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싶다.
2025년 11월 현재 한국 정치는 노자의 어느 단계에 속할까?
국민들이 대통령은 물론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이름을 훤히 꿰고 있으니 '하지유지'의 수준은 아니다.
주요 정치인의 이름 뿐 아니라 법무부 장관과 차관. 검찰총장과 그 대행, 서울중앙지검장의 이름까지도 상당수 국민들이 알고 있다.
법 없이도 살 대부분의 국민들이 법무장관과 검찰 주요 인사들의 이름을 아는 것은 알고 싶어서 안 것이 아니다. 정치 검찰과 검찰 개혁, 그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공방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론을 점령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논란이 뉴스를 온통 도배하고 있다.
항소 포기 논란의 내용은 너무도 많은 언론이 무수히 반복하고 있는만큼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검찰 안팎의 잡음에 국민은 피곤하다.
검찰은 왜 선택적으로 분노하고 반발하는지, 그런 검찰에 정부는 왜 빌미를 제공해 분란을 자초하는지 국민들은 답답해한다.
정치 검찰의 집단 항명 사태라며 법까지 고쳐 검사 징계 수준을 높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전쟁' '탄핵'을 운운하며 정치 공세에 열을 올리는 국민의힘 등 정치권 모습도 국민들을 지치게 만든다.
국민들이 욕하는 정치보다 더 나쁜 단계가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정치다. 너무 피곤해서 욕할 힘도 없게 만드는 정치다.
올 한 해는 벽두부터 힘들고 피곤했다. 윤석열의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으로 어수선하게 시작해 탄핵과 특검 수사, 계엄 세력들의 버티기와 꼼수, 사법부의 비상식적 조치들. 대선 국면에서 벌어진 각종 정치 놀음과 분열상, 그리고 미국의 관세 폭탄 등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단 하루만이라도 정부와 정치권, 검찰과 사법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해지기를 순박한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