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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만들고, 있으면 키운다'…인플루언서·렉카가 돌리는 '혐오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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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일상을 파고든 혐오②]
개인 경험을 '집단 문제'로 확대…'혐오 명분' 제공
'밈·저격·좌표찍기'…혐오 표적이 된 후 죽음까지 이어져
영상 편집자 "밋밋하며 사람들이 보겠나" 변명

AI 생성 이미지AI 생성 이미지
▶ 글 싣는 순서
①중국계 친구에게 '짱개'…웃음으로 포장된 교실안의 혐오
②'없으면 만들고, 있으면 키운다'…인플루언서·렉카가 돌리는 '혐오 공장'
(계속)


소셜미디어(SNS)가 사실상 혐오 표현을 확대 재생산해 일상에 퍼뜨리는 '혐오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극우 인플루언서와 사이버렉카 등 일부 악성 유튜버가 부정적 사건·사고를 특정 집단의 문제로 가공하고, 혐오 발언을 재생산하는 사례가 확산하면서다.

이들 혐오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나만 싫어하는 게 아니다"라는 확신을 제공해 혐오 감정을 합리화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멀쩡한 사람 극한으로 모는 인플루언서·렉카

일부 유튜버들은 돈벌이를 위해 다양항 방식의 혐오 콘텐츠를 제작하며 개인에게 또는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특정 집단에서 비롯한 문제로 간주하면서 갈등 조장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특정 이슈를 요약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혐오 표현을 삽입해 눈길을 끄는 방식이다.

극우 인플루언서이자 2024년 은퇴한 구독자 119만 명 보유한 '뻑가(PPKKa)'가 대표적이다. 10·20대 남성을 주 시청자로 확보했던 뻑가는 5분 요약 콘텐츠에서 사회적 갈등의 모든 원인을 '페미니즘'이나 '여성 단체'로 지목한다. 섬네일(영상 대표 이미지)에 "또 페미야?", "한국 여자들 난리 났다"는 자극적 문구를 사용한 후 댓글창에서 시청자가 혐오 발언을 쏟아내도록 유도한다.

극우 인플루언서이자 2024년 은퇴한 구독자 119만 명 보유한 '뻑가(PPKKa)'. 유튜브 캡처극우 인플루언서이자 2024년 은퇴한 구독자 119만 명 보유한 '뻑가(PPKKa)'. 유튜브 캡처
그가 "한 인터넷 방송인이 페미니스트"란 허위 사실을 담은 혐오 콘텐츠를 제작했고, 집단 린치를 견디지 못한 해당 방송인이 2021년 1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지식'과 '논리'의 탈을 쓴 채널도 있다. 인문학적 지식을 표방하는 '성제준TV'(구독자 85만 명)나 20·30대 남성의 시각을 대변한다는 '캡틴TV'(구독자 53만 명)는 특정 정치인의 실언을 두고 "수준 미달", "국격 하락"이라며 조롱하거나, 사실관계를 생략한 채 "좌파들이 나라를 망친다"는 음모론적 시각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반면 '사이버렉카'는 타인의 부정적 사건·사고를 다루면서 조회수를 올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한다. '탈덕수용소'는 인기 여성 아이돌의 표정이나 행동을 교묘하게 편집해 "인성 논란", "왕따 증거"를 조작했다가, 가수 장원영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현재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짧은 시간에 복잡한 이슈를 요약하기 위해 혐오 표현이 섞인 유행어(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솔직한여자TV는 최근 고조된 반중(反中) 정서에 편승했다. 이 채널은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나 일부 중국인 범죄 사례를 마치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과장해 위기감을 조성했다.

특히 "중국 땅 된 제주도 근황" 같은 콘텐츠에서는 "'중국인 때문에 드럼통(살인 은폐를 암시하는 은어)에 들어간다"는 식의 혐오 표현을 남발했다.

 혐오 콘텐츠 노출땐 '동조하거나 위축되거나'

이런 혐오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들은 암암리에 심리적으로 동조하게 되거나 반대로 자신도 표적이 될까봐 위축된다. 성인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한 석유화학 업체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정민씨는 중국인 직장 동료와 대화하지 않는다. 대학생 시절, 국제정치학 강의에서 한 팀이 된 중국인 여학생에게 중국의 정치체제를 주제로 발표를 제안하자 그가 대뜸 "내정 간섭하지 말라"며 화를 냈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기자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여줬다. 구독자 33만 7천 명을 보유한 사이버렉카(이슈 유튜버) 채널 '솔직한여자TV'였다. '중국 땅 된 제주도 근황', '한국인이 중국 가면 사라지는 이유'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추천 목록에 떠 있었다. 김씨는 "직장 생활은 신뢰가 기본인데, 결국 중국인 동료도 영상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에 종사하는 박한솔씨는 SNS에서 '틀딱판독기'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당황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메시지 끝에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붙이거나 '해요체'를 쓰면 나이 든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최근 젊게 살고자 노력하는 40대 남성을 뜻하는 '영포티'가 멸칭으로 변질되면서, 본인도 비난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40대 남성이 쓴다는) 말투와 행동, 복장이 내게 익숙하다"면서 "비난받지 않기 위해 평소 습관까지 고쳐야 하냐"고 토로했다.

 "바른말 하면 보겠나"…돈 벌려고 혐오와 공생 택한 SNS

문제는 이들 악성 유튜버의 '혐오 장사'가 이제 상당수 국민을 대상으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3년 발표한 미디어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 혐오 콘텐츠는 소수 커뮤니티를 넘어 전 국민이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5월 벌어진 이른바 '집게손 논란'이다. 당시 편의점 광고에 등장한 손동작을 캡처해 "남성 성기를 비하한 표현"이라는 음모론이 일부 커뮤니티에서 제기되자, 다수의 사이버렉카 채널이 이를 혐오 콘텐츠로 가공해 확산시켰다. 없던 혐오를 '만들어' 낸 뒤 집단적인 공격을 유도해 수익을 창출한 전형적인 사례다.

현장의 영상 편집자들은 알고리즘 구조상 혐오적 표현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한다. 익명을 요구한 사이버렉카 채널 편집자 A씨는 "개인적으로는 혐오 표현 사용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영상이 밋밋하거나 길어지면 시청자들은 가차 없이 '뒤로 가기'를 누른다"며 "결국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얻으려면 자극적인 밈과 혐오 표현으로 시청자를 붙잡아두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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