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저지른 12.3 내란 사태는 국회의 기민한 대처로 하룻밤 새 막아냈지만, 그 후폭풍은 시민들이 피땀으로 일궈온 한국 경제를 가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尹 한마디에 박살났던 한국 경제
내란 충격에 금융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내란 직후 코스피(KOSPI) 시가총액은 외국인 투자자가 대거 이탈하면서 약 100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내란 전날 1400원을 겨우 넘겼던 원/달러 환율은 하루만에 1410원대로 뛰어올랐고, 연말에는 1470원대까지 오르내리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해외 신용평가사들도 동요했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내란 사흘 뒤 "일시적으로라도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했고, 같은 날 무디스도 "내수와 경제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내란이 일으킬 충격을 짚었다.
이들의 지적은 기우가 아니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자 기업 투자가 말라붙었고,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탄핵 정국이 절정으로 치닫던 올해 1분기 -0.2% 역성장까지 기록했다. 2분기에도 0.7% 성장에 그치면서 국내외 곳곳에서 올해 연간 기준 성장률을 0% 후반대로 내다봐, 건국 이래 여섯번째로 낮은 기록을 세울 것으로 우려됐다.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성장 엔진이 꺼지자 내수 시장도 얼어붙었다. 기준치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 전망이 더 많다는 뜻인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0대로 떨어지며 16년 만에 최저기록을 세웠다. 시민들이 지갑을 닫자 1분기 민간소비는 전기대비 0.1% 감소하며 코로나19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윤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전 국무총리까지 탄핵되는 등 정부의 리더십이 실종된 사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장벽은 시시각각 한국 경제를 압박했다. 그나마 중요한 협상 국면에 내란까지 일으킨 무능한 윤 전 대통령이 물러나고, 탄핵 국면을 핑계로 시간까지 끌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오갔던 시절이다.
이러한 혼란은 단순히 윤 전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 행위만의 일시적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강력한 '부자 감세'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겠다고 나섰지만,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그럼에도 취약계층의 복지를 지키고 기업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정부 재정은 이미 거덜나 사태를 무기력하게 방치했다. 윤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내내 반복됐던 잘못된 정책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 자체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증명한 한국, 평화로운 정권 교체에 회복 흐름 올라탄 경제
연합뉴스흔들리던 한국 경제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반등의 실마리를 찾았다.
정권교체 전후로 두 차례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이 집행되자 고사 직전이었던 내수 시장은 반등의 기미를 찾았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자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달 112.4를 기록하며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민간소비는 3분기 1.3% 늘어 2022년 3분기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출 전선을 사수했고, 투자 심리도 회복되기 시작해 3분기 설비투자는 2.6% 증가했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에 묶인 돈을 생산적 금융을 강화하겠다는 기조까지 더해지며 코스피지수는 지난 10월 4천 포인트를 처음으로 돌파하기도 했다.
우려가 컸던 한미(韓美) 관세 협상은 타결에 성공해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동차 등 주요 산업 관세를 애초 미국이 제시한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현금 2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조선업 관련해서도 1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
그 결과 3분기 GDP 실질성장률은 1.3% 급증해 15분기 만에 최고 성장기록을 세웠다. 상반기만 해도 0%대 성장이 확실해보였지만, 올 4분기에 0% 이상만 성장하면 연간 기준 1.1% 성장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국내외 전문기관마다 내년에는 한국 경제가 1% 후반~2% 초반의 양호한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불안 요소는 여전…단순 회복 넘어 잠재성장률 높이도록 내년부터 성장 전략 성과 내야
연합뉴스이처럼 내란 광풍에도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 아래 한국 경제가 안정을 되찾았지만,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고 있는 환율이다. 불황의 위기 속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내수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가 시중에 풀었던 돈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여기에 모수개혁에 성공하며 급격히 덩치가 커진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로 단기간에 외화가 빠르게 유출되자 불 붙은 환율에 기름을 끼얹었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환율을 잡지 못한 채 맞이한 올해 겨울에 석유류 등 에너지 가격이 뛰면 물가도 덩달아 올라 간신히 살린 내수시장이 다시 침체될 수도 있다. 당장 지난 10월과 11월 두 달 연속 소비자물가가 2.4%나 올라, 정부 목표치인 2%를 한참 상회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변덕스러운 미국의 통상 정책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관세협상에서 구체적인 투자 방식 등을 놓고 세부사항이 아직 조율되지 않은데다, 비관세 협상은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어 언제든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불안요소를 감안하더라도, 내란 충격에 비할 수는 없는 만큼 바닥을 친 한국 경제가 내년에는 회복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다만 미국의 관세 장벽으로 보호주의가 대두되고 AI 등 신산업이 발달하는 등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단순히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을 돌이키는 수준에 멈춰서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내년에는 반드시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새 정부가 성장 전략을 쓴 효과가 없다"며 단순히 회복 수준이 아닌, 한 발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는 AI를 비롯한 초혁신경제 30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한다지만, 미국·중국의 독주 아래 한국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전통의 주력산업이었던 석유화학산업이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인지, 조선업이 대미(對美) 투자를 활로로 삼아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정부가 내놓은 또 하나의 비장의 카드인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정책이 과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중요한 대목이다. 여전히 지방 부동산 경기가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적절한 물량을 공급하면서도 부동산 거품을 꺼트리고 '생산적 금융'으로 시중 자금을 돌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김용기 대표(전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는 "단기적이고 부동산 중심인 기존의 자본시장의 흐름을 바꾸도록 국민성장펀드, 자본 규제 개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이 내년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라며 "실제로 내년에 기업의 투자 결정에서 자금 여건이 이전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과의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국내에 투자·고용되어야 할 것이 해외로 이전될 수 있어, 국내 투자를 얼마나 활발히 가져갈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라며 "부동산 가격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 다시 자금의 흐름이 부동산 시장으로 흐를 수 있다"며 여전한 불확실성 아래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생산적 금융' 정책이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