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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일괄 처벌은 신상필벌보다 軍 사기 꺾는 일[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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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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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까지 대며 무고함 주장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억울함 호소
"설령 잘못 있어도 세세히 따져야…계급별 일률적 징계는 수긍 어려워"
2년여 전 박정훈 사건 때도 '유죄추정' 흑역사…12‧3 '참군인' 없었을 수도
이 대통령 "억울한 사례 없도록 세심히"…상하 신의가 강군의 조건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지금의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학창 시절 '단체기합'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 잘못일지라도 집단 전체에 벌(기합)을 내리는 권위주의 시대의 악습이었다.
 
대개 단결과 협동심을 기른다는 이유에서였지만 거짓 명분이다. 강요된 집단주의는 억울한 피해의식을 낳고, 집단 내 약자를 대신 괴롭히는 폭력적 전가가 이뤄질 뿐이다.
 
12·3 불법 비상계엄 연루자들에 대한 정부의 신상필벌을 보다 보면 구시대 유물인 단체기합의 또 다른 폐단을 곱씹게 된다.
 
단체기합은 개인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비합리적 연대책임을 묻는 일이다. 그 시절에는 일개 학생 따위의 인권이나 개인적 사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12·3 연루자 중 일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사실상 연대책임의 큰 틀에 갇혀있는 것 같다.
 
이는 12·3 사태 직후 시작된 검찰 수사의 결과가 나중에 정부 내란청산TF의 면밀한 재조사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2·3에 연루된 군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증거까지 제시하며 무고함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정도 차이가 있고, 군의 지휘체계 특수성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하는데, 계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징계 유무나 수위를 정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12·3 사태의 충격과 피해를 감안하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관용의 여지는 줄어든다. 그러나 사태 발생 1년이 지난 지금, 굳이 서둘러 처벌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신중함 또한 미덕이 된다.
 
1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드느니 10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편이 낫다는 영국의 법률 격언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근대 사법제도의 중요한 근간이 됐다.
 
 박정훈(준장)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 류영주 기자 박정훈(준장)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 류영주 기자
우리 군은 윤석열 대통령실이 맹위를 떨치던 2023년 여름 박정훈(준장)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을 '유죄추정'에 입각해 집단항명 수괴로 단죄하려 한 흑역사가 있다. 불과 2년 반 전의 일이다.
 
다행히 국민적 성원에 억울함이 풀렸지만 군은 신뢰를 크게 잃었다. 만약 박 준장이 그대로 처벌 받았다면 윗선 눈치 보기 같은 병폐는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12·3 사태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참군인도 없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으며 12·3 사태 징계와 관련해 "조사 과정에서 억울한 사례가 없도록 세심히 살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장관후보자 시절 '신상'과 '필벌'을 명확히 구분하며 "여러 가지 현안을 하나씩 정교하게 풀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비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바친다(士爲知己者死). 군의 리더십도 다르지 않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마음의 응어리가 남지 않도록 하는 것, 충성스럽고 용맹무쌍한 군대는 상하 간 신의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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