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주유소. 1700원대로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주유소다. 김수진 기자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주유소 앞. 경유를 넣는 화물차 기사들의 표정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나마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이곳까지 왔지만, 몇일 사이 순식간에 오른 기름값을 보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는 기사들도 있었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리터당 1920.1원으로 휘발유 가격 1898.1원을 넘어섰다. 과거 휘발유보다 저렴해 '산업의 피'로 불린 경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화물 노동자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름값만 한 달 2백만 원 추가"… 벼랑 끝 화물 운전자
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제1터미널에 화물차가 정차한 모습. 김수진 기자
450리터 용량의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를 10년째 운행하는 50대 화물 운전자 이혁주씨는 주유 영수증을 확인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예전에 비해 리터당 400원 정도가 올랐다. 한 달에 보통 4천 리터를 쓰는데, 계산해 보면 기름값으로만 100만 원이 더 나가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안전운임제 해당 품목이라 유가 상승분이 2월부터 보전된다고는 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받아본 적은 없다"며 막막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의 최소 보호 장치인 안전운임제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윙 카고(일반 화물) 운전자들의 상황은 더욱 처절하다.
21톤 윙바디 화물차를 운행하는 허재혁(33)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400리터의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운다. 한번 주유에 결제되는 금액만 76만 원. 불과 얼마 전(1500원 대)보다 16만 원이 올랐다. 한 달이면 이전보다 240만 원을 기름값으로 더 길바닥에서 쓰는 셈이다.
허씨는 "짐을 싣지 않고 달리는 공차 운행 리터당 2천 원에 가까운 현금을 더 부담하는 셈이라 100% 적자"라며 "기름값 한 푼이라도 아끼려 싼 주유소를 찾아 30분 넘게 줄을 서 대기하는 게 지금의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장 생활비에 타격이 와서 계획했던 가족과의 외식 일정 등도 모두 취소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대다수의 화물 운전자는 수입의 절반 이상이 기름값으로 빠져나가면서 당장 생활비부터 줄여야 하는 처지다. 또 다른 화물차 운전자도 "지금은 정말 최악이다. 다들 죽지 못해서 일을 한다"면서 "손해를 보더라도 운송사에서 일거리를 잘라버릴까 봐 어쩔 수 없이 길 위로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빈 차로 달리느니 시동 끄자" 안전운임제도 일시적 폭등엔 한계
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제2터미널에 윙 카고 화물차가 정차한 모습. 김수진 기자고유가 충격은 물류 현장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특히 장거리 운행이 끝나고 돌아올 때 실을 화물을 찾지 못하면 '공차(빈 차) 운행'으로 기사들이 치명적인 적자를 입는다.
장정훈 민주노총 화물연대 서울경기본부장은 "현재 일감은 줄어드는데 운임은 최저 수준"이라며 "장거리 운행 시 돌아올 짐이 보장되지 않는 공차 상태라면 기름값 부담 때문에 아예 운행을 기피하거나 차를 세우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는 유가 상승분을 운임에 반영하는 '안전운임제'를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낮다.
제도의 적용을 받는 컨테이너(트레일러) 기사 황기석(65)씨는 "운임 대비 기름값 비중이 평소 25%에서 현재 40%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제도적 보호가 있음에도 고통이 여전한 이유는 평균 유가를 기준으로 한 산정 방식에 있다. 장 본부장은 "운임에 유가를 반영할 때 특정 시점의 최고가가 아닌 1월부터 3월처럼 분기별 일정 기간의 '평균 유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지금처럼 단기간에 유가가 폭등하는 시기에는 기사들이 지출한 비용을 온전히 보전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