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5개국을 콕 집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하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SNS에 "바라건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을 받는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이곳에 함정을 보낼 것"이라고 적었다.
미국은 아직 공식 요청은 하지 않았지만 이들 나라의 반응을 찔러 본 데에 이어 조만간 정식으로 비용 분담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선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해적 퇴치 활동을 하는 해군 청해부대 구축함 등이 2020년에 이어 다시 작전 범위를 넓히는 것이 숙제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사망 등에서 보듯 중동 정세가 6년 전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위험하다는 것. 당시에도 동맹인 미국과 경제협력 잠재력이 큰 이란 간 선택의 딜레마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독자 파병'이란 일종의 절충안으로 미국 요구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고 이란과도 크게 척을 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 국회 동의 절차를 생략한 것도 '국민 보호 활동' 명분을 통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본격적인 전쟁 국면에서 폭 35km 안팎의 좁은 해협을 놓고 미국과 이란이 강대강으로 맞붙고 있다.
미국은 비용 분담을 명분으로 동맹국은 물론 중국에도 연합체 참여를 압박하며 위험을 분산하려 한다. 하지만 더 잃을 게 없는 이란은 해협 봉쇄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예측 불가의 휘발성과 폭발력을 키우고 있다.
2021년 청해부대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국적 화학 운반선 나포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호르무즈해협 인근 해역에 도착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청와대가 군함 파견 가능성에 '신중 검토'라며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엄중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언급'임을 지적하며 여지를 만든 뒤, 중동 정세와 관련국 동향을 주시하면서 대처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정세 자체가 매우 유동적인 만큼 먼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국제 사회와 보조를 맞춰 점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공개 압박의 성격이 강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다국적 작전의 지휘체계, 임무범위, 교전규칙이 명확히 제시된 상태는 아니"라며 "일단 추이를 지켜보되 조건부·단계적 참여 옵션을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호르무즈 파병 가능성을 언급했던 일본도 막상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는 우리와 비슷하게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집권 자민당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무조사회장은 이날 NHK에 출연한 자리에서 관련 질문에 "법리상의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지만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고 "장애물은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국제법 위반 논란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많기 때문에 추가적 확전이 쉽지 않기도 하다.
이와 관련,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동맹국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번 사안은 우리 군의 역량과 장병들의 생명이 직결된 문제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종합적이고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작전 환경의 근본적 차이 △국익을 기준으로 한 전략적 선택 △국회 동의 등 절차적 투명성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이는 호르무즈 군함 파견을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에 정면 배치"라고 규정한 참여연대 등 진보단체들과는 온도차가 분명하지만, 사실상 공히 파병 반대론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에는 6년 전보다 사안이 훨씬 중대하고 작전 양상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회 동의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런 절차적 수순을 통해 국익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도 함께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