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국제크루즈터미널에 대형 크루즈 선박이 정박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정혜린 기자부산에 정박하는 크루즈 선박이 크게 늘면서 주민들이 매연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관계 기관들은 경제적 효과만 강조할 뿐, 대기오염 방지 대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크루즈 굴뚝서 쉴 새 없이 회색 연기…5분 거리엔 초등학교
평일 오전 부산 영도구 국제크루즈터미널. 거대한 크루즈선이 정박하기 위해 선착장으로 다가왔다. 굴뚝에서는 회색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연기는 정박 이후에도 쉬지 않고 하늘로 치솟았다.
크루즈터미널 인근에 사는 주민 김모(70대·남)씨는 "산책하러 자주 나오는데 크루즈 선박이 들어오면 아침부터 밤까지 정박되어 있다. 크루즈 선박에서 엔진을 돌리는지 연기가 계속 올라오는 게 보인다"며 "대기오염이 있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크루즈터미널에서 도보 5분 거리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학교 옆에는 아파트 단지와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 주민들도 크루즈에서 내뿜는 매연을 따가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주민 오모(68·여)씨는 "크루즈 선박에서 내뿜는 매연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숨으로 다 들이마시고 있다. 몇 년이 지나면 우리 몸에 어떤 이상이 나타날지 몰라 걱정된다"며 "영도에 안 그래도 선박들이 많이 다녀서 공기가 안 좋다고 하는데, 크루즈 선박까지 대기 오염에 한 몫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주민들이 크루즈 매연 문제를 제기해 왔다. 부산 영도구의회 김기탁 의원은 "2~3년 전부터 정박한 크루즈에서 엔진이 계속 돌아가 매연이 발생한다는 주민 민원이 들어왔다. 주민 건강을 우려해 영도구청을 통해 부산항만공사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정박 내내 대기오염 물질 배출…부산 크루즈 입항 2배 '껑충'
부산항에 입항한 크루즈 모습. 부산항만공사 제공
크루즈선은 정박 중에도 계속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통상 항구에 10~12시간 머무는데, 정박 중에도 내부 냉난방이나 편의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보조엔진을 계속 돌린다. 이 때문에 굴뚝에서는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이 분출된다.
이 같은 배출가스는 인체에 심혈관질환, 조산, 폐암 등 심각한 피해를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에 따르면 크루즈선 한 대가 해상에서 하루 동안 배출하는 황산화물은 승용차 150만 대 분량이고, 미세검댕이는 차량 100만 대 배출량보다 많다.
문제는 최근 부산항에 입항하는 크루즈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올해 부산항에 입항하는 크루즈선은 지난해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 부산시는 크루즈산업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어, 앞으로 크루즈선 입항과 체류 시간은 더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기오염 대책 없어…전문가 "선제적 대비해야"
하지만 크루즈선으로 인한 대기오염 저감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육상전원공급장치(AMP)는 육상 전기를 선박에 공급해 엔진을 끌 수 있어 항만 대기오염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으로 꼽히지만, 부산지역 크루즈 부두에는 현재 설치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북항 크루즈부두는 2030년까지 설치한다는 계획은 있으나, 영도 크루즈터미널은 계획조차 없다.
이 밖에 대기오염 예방 조치도 배기가스 정화장치 의무화 등 모든 선박에 적용하는 규정만 있을 뿐, 정박 중 장시간 매연을 내뿜는 크루즈선에 대한 별도 대책은 없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1년에 부산항에 입항하는 전체 선박 1만 4천척에 비하면 크루즈선은 매우 일부분이다 보니 현재로선 크루즈에 한정한 별도 대기오염 대책은 없다"며 "육상전원공급장치는 해양수산부 전국 계획에 따라 설치되는 상황이라, 영도크루즈터미널 확충 계획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부산항만공사(BPA). 송호재 기자 전문가들은 부산시 등 관계 기관이 크루즈선이 가져 올 경제적 효과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크루즈가 유발하는 환경오염과 주민 피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서대학교 국제물류학과 한철환 교수는 "부산시가 부산항을 동북아시아 크루즈 모항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 앞으로 크루즈 입항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상황에선 크루즈선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을 지역 주민들이 다 마시게 돼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크루즈가 1척이 들어오든 100척이 들어오든 환경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육상전원공급장치를 적극적으로 설치하고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크루즈 대기오염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크루즈선박이 부산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과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적인 피해에 대해 더 철저하게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