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삼성전자 노사가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불과 1시간여 앞두고 성과급 잠정 합의에 성공했다. 이 문제를 놓고 갈등을 거듭한 지 거의 반년 만이다. 이번 합의로 파업은 극적으로 유보됐다. 잠정 합의안이 노조원 투표 결과 과반 찬성표를 얻어 가결되면, 인공지능(AI) 확산과 맞물린 반도체 초호황이라는 전례 없는 기회를 파업으로 놓칠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는 해소 국면을 맞게 된다.
이번 극적 합의는 국가 중추 산업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갈등 조정에 나서고, 노사도 이에 응해 한 발씩 양보한 결과다. 노사는 그간의 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총파업 1시간여 앞두고…삼전 노사, 한 발씩 양보 후 손 잡았다
삼성전자 노사는 20일 오후 10시 30분쯤 경기도 수원의 고용노동부 경기고용노동청에서 2026년 성과급 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의 최승호 위원장, 사측 교섭대표위원인 여명구 부사장,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손을 교차해 맞잡고 활짝 웃었다.
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수차례 결렬됐던 성과급 협상이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일을 불과 1시간 30분 앞두고 결실을 맺은 것이다. 노조는 즉각 이달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로 예정되었던 총파업을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유보한다고 밝혔다. 잠정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노조 조합원 찬반투표가 진행되며, 과반 찬성표를 얻으면 합의안이 확정된다.
양측은 반도체 훈풍을 탄 삼성전자의 천문학적 액수의 영업이익을 직원들에게 어떻게 나눌 지를 두고 여태껏 평행선을 그려왔다. 그 결과 연봉의 50%로 상한이 있는 기존 성과급 제도는 유지하되, 초호황을 맞은 반도체(DS) 부문에 대해서는 상한을 없앤 '특별경영성과급'(반도체 특별성과급)을 사실상 제도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관련 기사: 상한 폐지·자사주 지급…삼성전자 '성과급 제도' 표준 되나)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막판 쟁점이 됐던 반도체 적자 사업부에 대한 성과급 배분 문제와 관련해서는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회사의 원칙이 일정 수준의 지급 제한으로 구체화 돼 합의안에 적시됐지만, 해당 제한을 내년부터 적용하는 유예 방식으로 노사가 손을 잡았다. '성과급 상한 폐지, 제도화'라는 노조의 핵심 요구도 상당 부분 관철됨으로써 노사가 양측 입장을 두루 반영해 절충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반도체 초호황에…반년 동안 이어진 성과급 갈등
이번 성과급 갈등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면서 연간 수백조 원 규모의 '역대급' 영업이익이 예상된다는 점, 메모리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영업이익의 10%를 상한 없이 주기로 10년간 성과급 제도를 고정했다는 점과 맞물려 격화된 측면이 있다. 반도체 부문 조합원들로선 한 해에만 수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의 쟁취 여부가 달린 일이었고, 사측으로서는 호황을 맞은 메모리사업부 뿐 아니라 여러 사업부를 아우르는 제도적 합리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난제였다.
삼성전자 노사는 작년 12월부터 교섭을 시작한 뒤 법적 공방을 벌일 정도로 첨예한 갈등을 겪어왔다. 올해 3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협상이 결렬된 후 공동투쟁본부를 꾸린 삼성전자 3개 노조는 곧바로 쟁의 행위 찬반투표를 거친 뒤 성과급 상한폐지·제도화 요구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이달 21일부터 18일 동안의 총파업을 예고해왔다.
삼성전자 과반노조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조합원들이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평택=황진환 기자이들 가운데 초기업노조는 반도체 사업 담당 DS부문을 중심으로 조합원 수를 빠르게 늘려 창사 이래 첫 과반 노조 지위를 획득해 투쟁 주도권을 쥐었고, 파업 시 생산 차질로 30조 원 대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반도체 타격론'을 앞세워 사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지난달에는 반도체 사업장 앞에서 수만 명 규모의 총집회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 파업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자 사측은 반도체 공정 관리 등 핵심 작업이 멈춰서는 안 된다며 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국민적 우려에 각계 '갈등 해결' 총력전…결정적 장면들
이처럼 대화로는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양측이 다시 마주 앉아 조율하고, 타협에 이르기까지는 반도체 파업이 최대 100조 원 규모의 국가 경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가 작용했다. 이 우려는 정부를 비롯한 각계에서 노사 대화를 권유하고 합의를 촉구하는 동력이 됐다.
막판에 노사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해당 우려를 근거로 양쪽 핵심 인사들을 찾아 이견을 조정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특히 김 장관은 최종 협상 테이블에서 직접 갈등 조정자를 자처해 사측의 성과주의 원칙과 노조의 요구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입장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16일 해외 출장에서 급거 귀국해 세 차례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조합원들을 향해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끝에 노조도 대화의 빗장을 풀며 어렵게 최종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노사 타협을 촉구했다. 타협이 불발될 경우, 정부로서는 쟁의권을 제한하는 최후의 강경 카드인 긴급조정 조치를 21년 만에 단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배수진'을 친 셈이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까지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밝히며 김 총리에 힘을 실었다. 법원도 반도체 파업 효과가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사실상 인정하며 주요 사업장 안전보호시설의 유지와 운영, 반도체 공정 관리 등 핵심 업무는 파업 시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노사 모두 "국민께 사과"
반도체 파업을 피하기 위한 각계 총력전의 중심에 선 노사는 부담 속에서 끝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 이번에 겨우 손을 맞잡았다. 다만 오랜 협상 과정에서 표출된 불신과 빈약한 갈등 조율 능력, 성과급을 둘러싼 내부 갈등 등 삼성전자 노사 앞에는 다수의 극복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초기업노조의 최승호 위원장은 잠정 합의안 도출 후 "저희 내부 갈등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삼성전자도 입장문을 통해 국민과 주주, 고객과 정부를 언급하며 "그동안 심려를 끼쳐 깊이 사죄 드린다"고 했다. 사측 협상 대표인 여명구 부사장(피플팀장)은 "이번 잠정 합의가 상생의 노사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맏형 격인 삼성전자의 성과급 갈등 양상이 다른 기업들로 전이될 가능성도 남아 있어 '이익 분배'의 합리적 방식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영업이익을 세금도 떼기 전에 일정 비율로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문제 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