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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할 수 있는가…비엣 타인 응우옌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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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전쟁·인종차별의 기억으로 쓴
문학 비평이자 자서전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

비엣 타인 응우옌·김영사 제공비엣 타인 응우옌·김영사 제공
문학은 타자를 이해하게 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타자를 침묵하게 만드는가.

퓰리처상 수상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신작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쟁과 난민, 인종차별의 기억을 통과한 작가는 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일이 아니라, 그 목소리가 왜 들리지 않았는지를 묻는 일이 글쓰기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응우옌은 1971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975년 사이공 함락 뒤 해상 난민으로 미국에 이주했다. 부모가 난민 캠프에 머무는 동안 위탁가정에 맡겨졌고, 패전한 남베트남계 난민의 자식으로 미국 문화와 언어를 익혔다. 이 경계의 경험은 그가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뒤에도 계속 붙들어온 문학적 출발점이다.

책의 핵심어는 '타자'다. 응우옌은 문학이 독자에게 "자신의 타자와 동일시"하도록 요구한다고 본다. 그 타자는 낯선 사람이나 적일 수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 친구와 연인, 나아가 자기 자신과 언어일 수도 있다. "언어와 자아도 타자가 될 수 있다"는 문장은 작가가 왜 타자성을 글쓰기의 조건으로 보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대신 말한다'는 익숙한 찬사도 경계한다. 타자는 정말 목소리가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세계가 있었던 것인가. 응우옌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 허먼 멜빌의 '모비딕' 같은 정전 속에서 식민주의와 제국, 인종화된 타자의 자리를 다시 읽어낸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아온 경험도 책의 중요한 축이다. 응우옌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침묵하고, 묵인하고, 사과를 입에 달고 사는 모범적인 소수자"로 자리매김돼 왔다고 쓴다. 그러나 그는 문학과 이야기가 타자성을 고립의 장치가 아니라 함께 목소리를 내는 힘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연대의 범위도 묻는다. 응우옌은 자신과 닮은 사람만 지키는 연대에 머물지 않고, 다른 역사와 상처를 가진 타자들의 삶까지 함께 바라보는 확장적 연대를 제안한다. "타자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고 우리의 삶만 방어한다면 그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라는 물음은 이 책의 윤리적 중심에 놓인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글쓰기를 선한 행위로만 보지 않는다. 문학은 타자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타자를 단순한 피해자나 배경으로 납작하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응우옌에게 작가의 책임은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말이 세계를 구원하고 어떤 말이 다시 파괴하는지를 끝까지 묻는 일이다.

그럼에도 책은 타자성을 고통의 이름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응우옌은 "피할 수 없는 타자성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을 수는 없을까"라고 묻는다. 전쟁과 난민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 책은 타자의 자리가 슬픔만이 아니라 예술과 연대의 가능성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 박설영 옮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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