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보단 제 이름을 알아주는 것 같아요." 전북 지역은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인식이 굳어진 지 오래다.
28일 전북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민선9기 전북 광역의원 지역구 38곳 가운데 25곳이 무투표 당선지역으로 집계됐다.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이 같은 정치 지형 속 정의당 소속 오현숙 후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북 전주시 차선거구(우아1·2동·호성동) 시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해당 선거구의 시의원은 총 2명으로 민주당 후보 2명과 정의당 후보 1명이 경쟁하고 있다.
"'정의당 싫어'는 일부"…냉소보단 응원 건넨 시민들
비가 내리던 지난 26일 오후 퇴근길. 딸과 함께 노란색 커플 운동화를 신은 정의당 오현숙 시의원 후보를 만났다.
전주 호성동 자동차등록사업소 사차선 도로의 신호등이 60초 간격으로 바뀔 때마다, 오 후보의 딸은 팔은 번쩍번쩍 들며 준비한 안무를 소화했다. 딸 뒤편 유세 차량에 올라선 오 후보는 90도 인사를 반복했다.
대부분의 차들은 바로 지나갔지만, 아주 일부는 경적을 울리며 선거운동을 호응하거나 차문을 내려 함께 손 인사를 해준 시민도 있었다. 오전 출근길 유세에선 "고생한다"며 수박을 두고 간 유권자도 있었다고 한다.
전북선관위 로고. 전북선관위 제공
비교적 냉소적이지 않은 반응이다. "평소도 이 같은 분위기냐"는 질문에 오 후보의 남편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여자가 밥이나 하지 뭐하러 나왔냐" "정의당은 이재명과 똑같은 좌파 아니냐"는 발언도 심심치 않게 들어 속상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1시간 30분 정도의 차량 유세를 마친 오 후보는 선거운동원 1명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인근 식당을 돌며 "안녕하세요 5번입니다"라고 연신 인사를 건넸다. "민주당을 찍겠다"는 대답 혹은 후보의 인사를 무시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시민들은 오 후보가 식당에 들어설 때 마다 "호성동 39층 고층 아파트 막아달라", "일 잘하는 건 다 안다"며 응원을 보냈다. 막걸리를 권하는 시민은 또 "선거 때만 오지 말고 평소에도 자주 보자"라고 말하는 시민 등 대다수가 오 후보를 반겼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주시 차선거구시의원 정의당 오현숙 후보. 김현주 뉴미디어크리에이터정당보단 인물…쌓아온 주민 신뢰는 '자부심'
오 후보는 이날 정의당 후보로 출마하는 현실적 어려움도 털어놨다. 그는 "정의당 지지율이 낮다 보니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며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표를 주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지난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전주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오 후보는 "소수정당 후보는 조직도, 동원력도 부족해 선거 때마다 누가 나를 지지하는지도 잘 몰랐다. 특히 2014년 선거가 그랬다"고 말했다.
낙선 뒤 십년이 넘도록 호성동에 거주하면서 주민들과 신뢰를 쌓아온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에서 관계를 맺어가다보니 정의당의 오현숙보다 '일 잘하는 오현숙'이라는 평가를 더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지난 선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생활하며 쌓아온 관계들이 조금씩 힘이 되고 있다. 교회, 학부모 모임, 봉사단체 등 생활 속 관계망이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후보의 '탁구 친구'의 친구라 소개한 A씨는 "일을 너무 잘한다. 민원이 있을 때도 항상 열심히 나서서 꼭 한표 행사하려고 한다"며 "정의당이라서 조금 그렇긴 하지만 그냥 현숙이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3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강동구 암사역사거리에서 더불어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이 지지를 호소하며 사전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민주당 독점구조…오 "정당 눈치 없는 것은 차별성"
삼겹살 집과 호프 집, 횟집 등을 다니며 오 후보는 "민원을 해결하겠다"고 자주 언급했다.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린 그의 결론은 '소수정당은 생활 정치가 유일한 희망'이라는 믿음이다.
오 후보는 "전북 민주당 정치가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천 과정 역시 불투명하다는 불만이 지역 안에 상당히 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민들도 지금의 공천 방식이나 정치 행태에는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번 선거만큼은 '민주당이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오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호성동 건지산 인근 39층 초고층 아파트 개발 반대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오 후보는 "호성동 주민들은 건지산과 숲세권 환경에 대한 애착이 크다"며 "초고층 아파트를 막아낼 후보는 오현숙이라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오현숙 후보. 김현주 뉴미디어크리에이터민주당 후보들은 전주시장(민주당) 눈치를 보느라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주민 대신 하고 있어 거대 정당과 차별점이 있다는 게 오 후보의 생각이다.
그는 "진보정당도 지역 안에서 생활 정치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며 "정당보다 주민 삶에 밀착한 정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호성동의 한 양푼갈빗집. 식사를 하던 B(50대)씨는 오 후보를 보자 벌떡 일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그를 붙잡았다. B씨는 "나는 민주당이지만, 이번 도지사 선거를 보고 너무 실망했다. 일 잘하는 오현숙 뽑을거니까 걱정 말라"는 덕담과 함께 오 후보의 저녁 일정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