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빈 목사(약수교회, CBS 자문위원). 박원빈 목사 제공 최근 로마 가톨릭 레오 14세는 방대한 분량의 사목서한(Encyclical) 을 공표했다. 흥미롭게도 교황이 즉위 후 시대의 가장 시급한 영적 위기로 뽑은 주제는 인공지능(AI)이었다. 기술이 인간성을 위협하는 오늘 시대를 진단하면서, AI 기술이 인간을 배제하고 지배하는 "또 다른 바벨탑을 쌓는 죄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특히 교황은 데이터와 생산성, 유용성으로만 평가받는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영적 착취를 과거 노예제에 비유하는 등,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매우 준엄한 목소리를 내었다. 더불어 AI가 가자지구와 이란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도덕적 양심을 배제하고 군사적 살상 무기로 오용되는 현실을 폭로했다.
실제로 교황이 경고한 바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자. AI는 이미 군사 무기로, 감시 도구로, 조작 수단으로 오용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가정의 어린이들이 이 변화의 최전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자녀들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AI 네이티브'로 자라나고 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기도 전에 챗봇과 대화하고, 부모의 목소리보다 음성 인식 AI의 목소리에 더 빨리 반응하는 세대 말이다. 그러나 편리함의 이면에 도사린 윤리적·정서적 위기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위기는 관계의 단절과 사고력의 저하다. 아이들은 이제 부모나 교사와의 깊은 대화를 줄이는 대신, 모든 질문을 24시간 언제든 비판 없이 친절하게 답해주는 챗봇(Chatbot)과 대화한다. "왜?"라는 질문에 부모는 "그건 네가 생각해 봐"라고 하지만, AI는 즉시 명확한 답을 준다. 어느 것이 더 편할까? 아이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인공지능이 주는 즉각적인 '인스턴트식 답변'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품고, 고민하고, 논리적으로 유추하는 '사고의 근육'을 잃어버리고 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이는 '영적 주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인간이 창조주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고하는 존재'에서 '소비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는 심각한 사회적·윤리적 결핍으로 이어진다. 본래 인간의 성숙은 나와 다른 타인과 부대끼며,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의견이 충돌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우는 '지루하고 느린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성경이 말하는 '제자 삼음(discipleship)'도 결국 이 과정이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만나 몸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과정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러나 대화의 상대를 기계로 대체한 아이들은 이러한 아날로그적 소통 과정을 생략한 채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정답'만을 구하는 성급한 존재로 자라난다.
이처럼 기계와만 소통하며 자란 세대는 필연적으로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하셨다. 이것은 상징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다. 내 앞에 선 이웃의 발을 직접 만져야 한다. 그런데 화면 속의 완벽한 정보와 이미지로 가득 찬 세대에게 '눈앞의 더러운 발'은 너무도 불편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이는 기독교가 전하는 사랑과 환대, 공동체 성경 가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교회와 기독교 언론은 단순히 기계를 멀리하라는 아날로그식 훈계를 넘어서야 한다. 대신 우리는 다음을 가르쳐야 한다:
첫째, '질문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AI의 정답이 아니라 "네가 생각해 본 건 뭐니?"라고 깊은 질문을 던지는 부모, 교사, 목사가 되어야 한다.
둘째, '공감하는 세대'를 양육하는 것이다. 화면의 정보 대신 눈앞의 이웃을 보게 하고, 지식의 전달이 아닌 관계의 형성을 우선하는 기독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술을 다스리는 '기독교 윤리적 주체성'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자극적이고 빠른 답변만을 종용하는 AI시대에, 우리 자녀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깊이를 회복하고, '함께'의 가치를 아는 건강한 신앙인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것.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교황이 경고한 '영적 착취'의 시대에, 한국 교회와 CBS는 다음 세대의 영혼을 지켜야 할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사명을 부여받았다. 거대한 바벨론 한복판에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묻고 있는가? "넌 무슨 생각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