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 중국 추격론의 진실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2년'이라는 이야기와 관련해 김동영 박사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전에도 2년이었고 지금도 2년이라고 한다. 우리도 그동안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라며 반론을 내놨다. 중국이 레거시 영역에서 치고 들어오는 건 맞지만, 한국은 이미 HBM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자원을 집중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HBM은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 게 아니라 10년 넘게 해온 것"이라며 "향후 몇 년 안에 누군가가 쫓아오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의 근본적 한계도 짚었다. "공급단에서 만들 수 있다 해도 공급 과잉을 해소할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자연독점 구조상 수요처를 많이 확보한 쪽이 가격을 낮추고 공급을 창출하는데, 중국은 아직 글로벌 시장 전체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가 소비재에서 자본재로 — 이게 거품이 아닌 이유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72%다.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은 60% 이상, NVIDIA는 65%, TSMC는 58%다. 시스템 반도체 회사가 메모리 반도체 회사를 부러워하는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 박사는 이 현상의 구조적 원인을 짚었다. "반도체가 소비재였다가 자본재로 완전히 탈바꿈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과거에는 PC가 안 팔리면 반도체도 안 팔리는 재고 순환 주기가 있었지만, 지금 메모리는 데이터센터를 구성하는 전기·수도·가스 같은 인프라 부품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두루마리 휴지 가격이 3배 올라도 낙엽을 쓸 수는 없다"며 "쌀처럼 없으면 안 되는 것의 지위에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특히 "투자 전문가는 가격이 펀더멘탈 대비 얼마나 비싸졌냐를 본다면, 경제학자는 왜 비싸졌냐에 먼저 초점을 맞춘다"며 "이 상품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걸 읽어내는 것"이라고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반도체 주의 질주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사이클 자체는 존재하지만 데이터센터 산업의 사이클로 바뀌면서 진폭이 줄고 주기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시장 일부에서 한순간에 사라질 거품이라는 공포가 커지는 것과 관련해 갑작스럽게 꺼질 가능성이 낮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반도체 호황 와중에 잠재성장률 최저 — K자 양극화의 정체
반도체는 역대급 호황인데 한국 잠재성장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OECD 추정에 따르면 올해 1.7%, 내년 1.5%로 매년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2023년에는 미국에 처음으로 역전당했다. 김 박사는 이 엇박자의 구조에 대해 "반도체 1분기 실적이 좋아졌다고 잠재성장률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라며 "잠재성장률은 인구 구조, 자본 축적, 총요소 생산성이 결정하는 15년 치 미래를 가리키는 지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국 경제가 K자 구조로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위로는 반도체·자동차·조선 같은 글로벌 1등 분야가 있지만, 서비스업 등 나머지 산업은 오랜 정체 상태라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인 여력을 단기 부양에 쓰면 언발에 오줌 넣기가 된다고도 했다. "이 여력을 연금, 노동, 교육 구조 개혁에 투자해야 반도체 사이클이 끝났을 때도 다른 씨앗들이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제안은 그래서 나왔다.
테슬라 $3만 vs 현대차 $6만 — 전략이 완전히 다르다
반도체 못지않게 오른 현대차 주가에 대해 김 박사는 "시장이 현대차를 완성차 업체가 아니라 피지컬AI 플랫폼 회사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모셔널의 로봇택시 상용화 발표,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 80% 보유, 미국 조지아 공장의 로봇택시·휴머노이드 동시 생산 기반, 웨이모에 아이오닉5 공급 계약이 맞물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테슬라와 현대차의 전략은 완전히 다르다. 테슬라 사이버캡은 목표가 2~3만 달러로, 카메라 8개만 탑재한 저비용 대량 생산 모델이다. 동남아, 중남미, 미국 저가 시장을 노린다. 반면 현대차 모셔널은 목표가 6만 달러 이상으로, 센서 30개 이상을 탑재한 프리미엄 안전 인증 모델이다. 미국·EU 대도시의 공유 서비스 시장을 겨냥한다. 김 박사는 현대차가 두 트랙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테슬라의 길도 일부 갖고 있고 모셔널의 길도 갖고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전략을 가진 회사"라는 것이다.
"테슬라는 솔직하지만 투명하지 않다" — 현대차가 선점한 것
로봇택시 전쟁의 진짜 승부처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라는 게 김 박사의 분석이다. 그는 "기술이 어느 정도 완성됐는데 시장이 이제 형성돼야 하는 이 시기부터는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시장이 커질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테슬라의 가장 큰 약점으로 데이터 불투명성을 꼽았다. 테슬라는 어느 나라 정부와도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투명함과 솔직함의 차이와 관련해 "투명함은 오늘 저녁 누구 만난다고 미리 얘기하고 나가는 것, 솔직함은 갔다 와서 만났어라고 하는 것인데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풀어 말했다. 현대차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정말 잘하는 기업들은 제도를 설계하면서 들어간다. 갈등이 없고 문제가 되지 않는 제도를 계속 제안하면서 자기 포지션을 지켜나가는 것"이 현대차의 강점이 된다. 한국 기업들이 과거 불균형 성장 과정에서 제도와 함께 움직이는 노하우를 체득했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 강점이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테슬라·스페이스X·xAI — 시너지이자 리스크
서학개미들의 테슬라 사랑은 전기차를 넘어선다. 테슬라·스페이스X·xAI가 합쳐져 지구와 우주를 잇는 피지컬AI 생태계가 완성된다는 내러티브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일론 머스크의 활동은 뭐가 됐건 그 안에서 공유되는 데이터가 다 한 맥락"이라며 "한 비즈니스에서 쌓인 데이터가 다른 비즈니스를 강화시켜주는 플랫폼적 성격이 있다"고 이 생태계의 강점을 짚었다. 테슬라가 계속 시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도 돈을 넣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생태계가 묶여 있다는 건 동시에 리스크이기도 하다. "xAI가 성인 콘텐츠를 허용하겠다고 했다가 유럽에서 그룹사 전체 매출의 3% 과징금을 맞을 뻔했습니다. 우주에서 벌어들인 돈까지 다 날아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한 곳에서 규제 위반이 생기면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은 틈새를 찾고 또아리를 틀어야 한다
김 박사는 한국이 소프트웨어나 AI 뇌에서 구글·머스크를 따라잡기 어려운 건 전략이 잘못돼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기업과 비교해 기술 발전이 느린 부분은 "G7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라며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 뒤 "우리가 차지할 틈들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고 거기에 또아리를 트느냐가 중요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조선, 방산이 그렇게 잘 된 산업들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경우 로봇택시에서 기술은 2등이지만 제도 설계로 틈새를 선점했듯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도 우리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