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류영주 기자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ETF)으로 인해 촉발된 국내 증시의 극심한 변동성과 관련해 금융당국이 '쓴소리'를 넘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다음달 초 자산운용사 대표를 불러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관련해 증권사들과 간담회를 연다. 간담회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관련 추가 안전장치와 소비자 보호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초단타'로 거래되는 레버리지…매매 회전율 200% 기록
지난달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변동률을 두 배로 추종하는 상품이다. 레버리지 상품은 시장 예상보다 더 빠른 초단타 거래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증시 변동성 문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2일까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하루 평균 매매 회전율은 122.5%에 달했다. 일 최고 20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도입한 상품이지만 효과는 별로 없고 부작용만 낳았다"며
"어떻게든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반성한다"고 공개 반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성'을 말하면서도, 말의 칼날은 증권사를 정확히 겨냥했다.
그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극심한 회전율로 증권사만 배를 불렸다"고 일갈했다. 이 원장은 "회전율이 그나마 완화된 게 130% 정도"라며 "이를 환산하면 매매수수료가 적게는 5조원, 많게는 1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어
"도박판에서 '뽀찌(도박판에서 돈을 딴 사람이 일정 금액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관행) 뜯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모양새"라며 "정작 플레이어는 실익이 없고, 관리-운영하는 시스템만 이익을 보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심하게 우려된다"고 직격했다.
이에
금감원은 다음달 초 증권사 대표들을 불러모아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관련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스피 변동성과 관련해 레버리지 상품이 가장 이슈인 만큼 자산운용사 대표들과 금감원장이 한 자리에 모여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4일 주요 증권사 10곳 리스크담당 임원(CRO)들과 간담회를 열어 빚투 등 미수거래 유도 관행을 자제하고 투자자 보호 대책을 수립해 달라고 당부했다. 임원들을 소집한지 불과 일주일만에 대표들을 따로 부르겠다는 것은, 그만큼 금감원 주도 고강도 관리에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위탁매매 미수금 1조4천 '역대급'…한국형 공포지수도 '95' 최고치
지난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의 모습. 박종민 기자금융당국 수장이 반성문을 써낼 만큼 최근 국내 증시 변동성과 빚투는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피 시장에서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했던 지난 23일 기준 초단기 빚투로 분류되는 '위탁매매 미수금'은 전장(1조2976억원)보다 1816억원 증가한 1조479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0일(1조6917억원)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않아 반대매매로 나간 금액 역시 전장(198억)원의 두 배가 넘는 424억원에 달했다.
증시 변동성마저 최악의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형 공포지수라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는 95.45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코스피 연간 변동상을 나타내는 VKOSP가 장중 95를 돌파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국내 증시 변동성이 한층 심화된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기본예탁금을 현행보다 상향 조정하고 투자자 교육을 더욱 강화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개인투자자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혹은 인버스 상품에 투자하려면 기본예탁금 1천만원을 예치해야 한다. 또 레버리지 상품 투자 시 금융투자협회 학습시스템에서 일반교육과 심화교육을 각각 1시간씩 이수해야 투자가 가능한다.
예탁금 올리고 교육 조건 강화 '논의'… 효과는 '글쎄'
금융당국은 예탁금 액수를 올리는 한편, 교육 조건을 강화해 투자자 유입을 막겠다는 계획이지만,
기존의 대응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다 당장 레버리지 상품을 철회할 수도 없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이찬진 금감원장의 "반성" 발언 역시 뾰족한 대안 없이 나온 무책임한 언사라는 지적도 금융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 원장의 "드러누워 막았어야"라는 말 자체만 부각되고 있는 점은 뚜렷한 대안이나 대응이 없는 당국의 현 상황을 반증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를 의식한 듯, 금감원은 이 원장의 발언에 대해 뒤늦게 배경 설명을 하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금감원은 전날 출입기자 공지를 통해 "단일종목 레버리지가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단기 변동성을 키우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레버리지에 대한 투자 쏠림으로 인한 투자자 손실 위험을 경고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의 발언으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코스피 변동성의 주범으로 지목돼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실효성 있는 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