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발표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앞으로 수십 년간 국가 경제 지형을 바꿀 초대형 첨단 산업 청사진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조 단위' 숫자의 잔치 속에서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자리는 철저히 실종됐다. 지역 경제계에서는 "미래 먹거리 경쟁에서 부·울·경이 완전히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정권 차원의 '투자 양극화'가 지역 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깊은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800조 호남·81조 충청… 부산은 알맹이 없는 '말 잔치'뿐
정부가 내놓은 메가 프로젝트의 핵심 축은 반도체, 피지컬 AI(물리적 인공지능), AI 데이터센터다. 정부는 이 가운데 반도체 부문에서 호남권(전남광주통합특별시)을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지목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총 800조 원 규모의 메모리 생산공장(팹) 4기를 유치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띄웠다. 충청권에도 후공정 패키징 거점 육성을 위해 81조 원이 투입된다.
반면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에 할당된 몫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혁신 거점'이라는 선언적 문구가 전부다. 구체적인 투자 금액도, 명확한 신규 설비 도입 계획도 숫자로 제시되지 않았다.
동남권 소부장과 전력 반도체 거점 육성은 이미 올해 초 정부가 균형발전 계획으로 발표했던 내용의 '복사판'에 불과하다. 대규모 신규 투자의 과실은 타 지역이 싹쓸이하고, 부산은 기존 계획에 이름만 얹어 구색을 맞춘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언했던 '피지컬 AI'마저 뒤통수… 대기업 신규 투자 '제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동남권이 중심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피지컬 AI' 분야 역시 결정적인 뒤통수를 맞았다. 불과 나흘 전인 지난 24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피지컬 AI는 동남권이 중심이 될 것"이라 공언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부는 새만금과 대구·경북만을 'K-로봇 양대 성장축'으로 지정했다. 울산에 내년 완공 예정인 SK그룹의 AI 데이터센터 외에 동남권 전반을 아우르는 메가급 첨단 산업 추가 투자는 전무한 실정이다.
지역 상공계가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대목은 첨단 대기업의 '지방 투자 외면'이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서조차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광주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서남권과 충북 청주를 신규 투자 후보지로 직접 언급하며 화답했으나, 부산에 대해서는 삼성전기가 진행 중인 기존 사업의 일부 투자 확대 외에 대규모 공장 증설 계획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 회장이 부산(삼성전기 기판), 울산(삼성SDI 배터리), 경남(삼성중공업 조선) 등 부·울·경 기존 사업장에 대한 투자 확대를 언급했지만, 지역 경제계의 냉소는 가시지 않고 있다. 800조 원이 투입되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기지나 충청·경북에 집중된 핵심 신사업(HBM·로봇) 투자와 비교하면, 동남권 안은 구체적인 총액조차 없는 '기존 공장 유지·보수' 수준의 생색내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첨단 산업 벨트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것"… 전면적 독자 생존론 대두
이번 발표는 단순한 '투자 유치 실패'를 넘어 동남권 경제의 장기 침체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전통 제조업의 디지털·AI 전환이 시급한 시점에서, 핵심 인프라인 반도체 공장과 로봇 양산 기지가 타 지역에 선점되면 동남권은 첨단 하이테크 벨트의 '하청 기지' 혹은 '단순 부품 공급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부산지역 상공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앵커 시설과 핵심 플랫폼이 없는 소부장 육성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라며 "원청이자 수요처인 대기업 공장들이 호남과 충청으로 가버리면, 동남권 기업들은 결국 저단가 부품이나 납품하는 2차, 3차 하청 기지로 영원히 굳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 주도 국책 프로젝트가 오히려 특정 지역 쏠림을 낳고 동남권 경제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의 입만 바라보는 천수답식 유치 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상공회의소 심재운 경제정책 본부장은 "정부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에서 동남권이 소외된 것에 대해 지역 상공계의 아쉬움과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업 유치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HMM 등 지역으로 이전해 오는 대형 해운 기업과 자원들이 지역에 잘 착근하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상공계가 먼저 전략적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며 "좋은 선수를 가지고도 전술이 없으면 경기에 지듯, 이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지역의 가치로 확산시켜 나갈 정교한 전략과 체질 개선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부산시와 지역 상공계가 대규모 첨단 산업 용지 조기 확보와 가덕도신공항 체계를 연계한 파격적인 자체 인센티브 마련 등 전면적인 '독자 생존 전략'을 서둘러 짜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