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CBS 이균형 대표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이정하-
1990년대를 풍미했던 이정하 시인이 너무나 사랑하지만 감히 닿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아야 하는 절절하고 애틋한 짝사랑의 감정을 담은 구절이다. 이미 3년 전 칼럼에서 차용했던 싯귀임에도 오늘날 다시 재소환 할 수 밖에 없음은 필자의 문학적 한계이자 이 싯귀만큼 전북특별자치도가 처한 상황을 대체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단견임에서 비롯됨임을 밝힌다.
대한민국 축구사를 통틀어 국민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단어는 단연 '경우의 수'일 것이다. 졸전에 전술마저 보이질 않는데, 본선 진출이나 토너먼트 탈락의 기로에 설 때마다 우리는 어김없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우리가 다음 경기를 몇 대 몇으로 이기고, 다른 나라가 비겨준다면…".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애처롭고 안쓰럽게 부여잡으며 국민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지금 전북의 처지가 딱 그 꼴이다. 메가프로젝트와 국가 반도체 분산배치 등 굵직한 국책 사업에서 전북이 줄줄이 소외되었다는, 적잖이 예상된 소식이 들려오자 전북지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단어는 '소외'와 '허탈'이다. 이미 메가프로젝트는 물건너 갔고 그나마 정부가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대해 추가 대책을 검토할 것이라는 '경우의 수'만 남은 것이다.
다른 지역들이 눈부신 성장의 과실을 독식하며 저 멀리 앞서나갈 때, 전북은 언제나처럼 뒤처져 '낙과(落果)'라도 떨어지길 바라며 경우의 수만 따지고 있다. 다른 지역의 번영은 '눈부시지만', 이를 바라보는 전북의 현실은 참으로 '눈물겹'다.
더욱 서글픈 것은 이 소외의 역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치 지형 속에서 언제나 '호남'이라는 거대 프레임에 묶여 있었지만, 정작 속내를 들여다보면 '호남이라 쓰고 광주·전남이라 읽히는' 세월의 연속이었다. 망국병인 지역감정을 끌어들일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호남 내 소외'라는 숨겨진 칼날 위에 서 있는 전북의 '3중 차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자는 것이다. 수도권에 밀리고, 영남에 치이고, 같은 호남 안에서조차 소외당하는 이 '삼중고(三重苦)'를 언제까지 묵인해야 한단 말인가!
이 암담한 현실 속에 지방선거 이후 전북 정치권의 역량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시작부터 빨갛게 변했다. 시험대에 오른 신임 이원택 도지사 체제를 비롯한 민주당 일색의 전북 정치 리더십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권의 눈치를 보며 기사 제목만이라도 부드럽게 다듬어 달라는, 이른바 '마사지'를 주문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속 좋은 소리다. 지금 전북이 한가로이 마사지나 받을 타이밍인가! 단언컨대 지금 필요한 것은 구차한 '마사지'가 아니라, 전북의 생존권을 건 강렬한 '메시지'가 먼저다. 외부에 기대는 천수답 정치를 끝내고 우리 스스로 일어서서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면서 끝내 해내고야 마는, 이원택 도지사 슬로건처럼 '내발적(內發的) 발전'이 무엇인지를 입증해 보일 때가 아닐까?
그나마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비록 메가프로젝트 국책 사업에서 참담하게 무너졌지만 전북 도민들이 기대를 거는 것은 '경우의 수'를 이끌고 있는 감독이 무능과 불통의 홍명보가 아닌, 이재명이라는 점이다. 수도권에 치이고 영남에 밀리고 호남에서도 소외받는 '3중 차별의 서러움'이라는 정확한 진단서를 끊어 처방해 준 이가 바로 이재명 감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현대차 새만금 투자 등을 떠올리며 전북 도민들 대다수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전북에 가장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대통령이 바로 이재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도민들의 시선은 이재명 감독의 전술 보드로 향한다. 비록 메가프로젝트는 물건너 갔지만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평가를 받는 전북지역 등에 대해 추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입장 발표가 어떤 결과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을 맺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전북 도민들은 결코 타 지역처럼 눈부실 정도의 화려함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더 이상 눈물겹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서글픈 푸념이 매번 선거 때마다, 매번 국책 사업 발표 때마다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빼앗긴 몫을 되찾고, 부당한 소외를 바로잡아 달라는 이 소박한 염원이 과연 그렇게 무리하고 과한 요구냐는 말이 더이상 공허한 울림에 그치지 않기를, 그리고 전북이 더 이상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지역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지역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