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소설 등을 영화로 만드는 일은 몹시 힘들다고들 말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활자가 사람들 머릿속에 그릴 법한 각양각색 이미지를 일정하게 만족시키야 하는 까닭이다. 실체가 없는 존재와 싸우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나홍진 감독 신작 '호프'는 이러한 점에서 관객들과 흥미로운 줄타기를 벌인다.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린 괴생명체는 영화가 시작되고도 한 시간가량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괴물이 남긴 여러 흔적들과 이를 직접 본 사람들의 전언 등을 통해 그 어마어마한 존재감은 더욱더 부풀려질 뿐이다.
막대한 물량을 투입한 극 초반 추격전 중에도 괴생명체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등장은 그렇게 지연되고 또 지연된다. 더욱이 관객들은 이미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괴물 이미지를 각자 머릿속에 그려 둔 상태다. 이러한 물음을 떠올릴 법하다. '도대체 괴물을 언제, 어떻게 등장시킬 심산이야!'
마침내 괴생명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아마도 압도당할 것이다. 양날의 검과도 같은 상상력의 고지에 나홍진 감독은 승리의 깃발을 꽂는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큰 스크린과 귀를 자극하는 웅장한 사운드가 지닌 힘을 그는 분명 염두에 두고 있었으리라.
영화 '호프'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해안가 마을 호포항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이곳 출장소장 범석(황정민)과 동네 청년들은 농로 한복판에 난자당한 채 죽어 있는 가축을 살펴본다 호랑이나 곰, 급기야 공룡이 벌인 일인 것 같다는 말들이 오가면서 괴생명체의 존재는 부각된다.
'호프'는 불과 하룻낮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관객들은 범석과 동네 청년들 리더 격인 성기(조인성)를 따라가면서 괴물의 실체에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서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범석, 그리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젊은 세대 성기의 시선은 이러한 접근법에 남다른 차별성을 부여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피어나는 '하룻낮의 꿈'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이 영화는 극 초반 괴물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면서 특유의 긴장감을 쌓아간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 전쟁 상황은 급기야 인간의 손이 덜 탄 숲으로까지 번진다.
듣도 보도 못했던 존재를 처음 마주하는 인간들은 한없이 나약하다. 그 두려움에 발조차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공포심을 떨쳐내려는 욕설이 난무하고, 서로 책임을 미루는 와중에 튀어나오는 언행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피어나는 희비극인 셈이다.
공간 배경이 비무장지대라는 점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의 투쟁을 그린 이 영화의 특징을 배가시킨다. 마을 곳곳은 '멸공'이라는 구호로 뒤덮여 있다. 휴전 상태에서 실체 없는 사상적 적과 싸워온 마을 사람들의 번뇌는, 물밖으로 던져진 채 입만 뻐끔대는 물고기와 공명하는 듯하다. 괴생명체를 두고 "우리랑 똑같다"고 규정하는 극중 누군가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을 준다.
후반으로 갈수록 극중 괴물의 실체는 보다 뚜렷해진다. 나와 인연을 맺어온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확산하는 증오는 인류의 몫만이 아니다. 이는 괴물들도 지닌 보통의 정서였다. 급기야 그들의 입을 통해 우리는 '희망' '믿음'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보다 쉽고 분명하게 확인한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 평가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꾼으로서 나홍진 감독은 그간 뜻밖의 사건에 내던져진 인물들을 통해 삶의 모호성을 웅변해왔다. 그 모호성은 캐릭터들 입밖으로 표현되지 않았기에 보다 강렬한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호프'는 이와는 다소 다른 결을 택하고 있다. 그 문법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는 미지수다.
156분 상영, 15세 이상 관람가, 7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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