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사피엔스 제공 도시의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 어려워진 시대, 시와 천문학으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는 책이 나왔다.
'너에게 별을 보낸다'는 천문학 작가 이광식이 엮은 '별 명시' 필사 선집이다. 정호승, 윤동주, 백석, 정지용, 나태주, 도종환, 안도현, 김춘수, 신경림 등 한국 시인 54명과 월트 휘트먼,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샤를 보들레르, 윌리엄 셰익스피어, 칼 세이건 등 해외 작가 11명의 작품을 함께 실었다.
책은 빛공해로 별과 은하수를 보기 어려워진 오늘을 '우주불감증'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이루는 원자가 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우리가 잊고 지낸 우주적 감각을 다시 불러낸다.
구성은 독특하다. 한쪽 면에는 별과 우주를 노래한 시가 놓이고, 맞은편에는 그 시와 연결되는 짧은 천문학 칼럼 '한 뼘 천문학'이 실린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며 별빛이 수십, 수백 년 전 출발해 지금 우리 눈에 닿은 빛이라는 사실을 함께 떠올리는 식이다. 시가 감정을 열면, 천문학은 그 감정의 배경이 되는 우주의 시간을 설명한다.
수록작은 모두 74편이다. '별들은 다정하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별 하나 갖고 싶다', '이 우주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 별과 은하, 태양계, 우주를 차례로 지나간다. 별의 일생, 은하수의 정체, 보이저 1호가 찍은 '창백한 푸른 점', 우주의 끝과 종말 같은 천문학 이야기도 곁들여졌다.
이 책은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쓰는 독서를 권한다. 마음에 남는 구절을 직접 옮겨 적고 여백에 자신의 문장을 더해 '나만의 책'을 완성하도록 꾸몄다.
이광식 엮음 | 북사피엔스
자음과모음 제공 젠지 독자층의 지지를 받아온 차정은 시인이 신작 시집 '에어컨 사라다'로 돌아왔다.
'에어컨 사라다'는 '토마토 컵라면', '여름 피치 스파클링', '유쾌한 워터멜론'에 이어 차정은 시인이 청춘의 감정과 사랑을 과일의 언어로 풀어낸 시집이다.
시집의 화자들은 십대와 이십대가 교차하는 경계에 서 있다. 더는 완전히 보호받는 아이도, 상실을 능숙하게 넘기는 어른도 아닌 이들은 사랑과 우정, 이별과 후회, 농담과 다정을 한여름의 차가운 공기 속에 펼쳐놓는다. 시인은 상처 입은 마음을 거창하게 위로하기보다, 흩어진 감정들을 유리그릇에 담듯 조심스럽게 모은다.
네트워크 비밀번호, 로파이, 플레이 버튼, 커버와 샘플링 같은 디지털 시대의 말들도 시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단순한 세대 감각의 장식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사랑이 연결되고 끊기고, 다시 저장되고 열람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시적 장치가 된다.
시인은 작가 인터뷰에서 과일을 "가장 직관적인 언어"라고 말했다. 토마토는 토마토답게, 복숭아는 복숭아답게 빛난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누군가를 닮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이 가진 색이 가장 선명해지는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번 시집의 바탕에 놓여 있다.
차정은 지음 | 자음과모음
창비 제공
한국시의 젊은 감각을 한 권에 모은 앤솔러지 시집 '햇생강이 나오면'은 '창작과비평'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신예 시인 특집'을 바탕으로 엮은 시집이다.
등단 10년 이하의 주목할 만한 시인 23명이 참여했고, 각 시인의 작품 두 편씩을 실었다. 강우근, 강지이, 김보나, 유선혜, 임유영, 주민현, 한여진 등 최근 시단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이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목 '햇생강이 나오면'은 남현지 시인의 시 '햇' 첫 구절에서 따왔다. 막 나온 생강처럼 풋풋하지만 달기만 하지는 않은 감각, 입안에 오래 남는 알싸함과 코끝을 찡하게 하는 향을 시집 전체의 이미지로 삼았다.
수록작들은 부드러운 위로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활의 피로와 일하는 몸, 병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 가족과 집, 도시와 노동, 젠더와 언어, 기억과 소멸의 문제를 각기 다른 리듬으로 붙잡는다. 김진선의 '가업'은 "누수를 머금은 채로 세워지는 마음"을 통해 균열을 안고 이어지는 생활을 보여주고, 유선혜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인물과 고통을 둘러싼 문학의 관습을 블랙코미디처럼 비튼다.
조용한 장면들도 있다. 주민현의 '이것을 녹차라 부르면'은 말없이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통해 친밀함의 결을 보여준다. 조온윤의 '빨강의 자리'는 "추악도 학살도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도/빨강으로 써둘게"라는 문장으로 상처와 아름다움을 한 색 안에 겹쳐 놓는다.
강우근·강지이·김보나 외 지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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