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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도 올려줄게" 청각장애인 계좌로 도박자금 세탁한 일당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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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불법도박사이트 수사 중 대포계좌 유통망 확인
명의자 대부분 청각장애인…계좌 1개당 150만 원 챙긴 모집책
같은 청각장애인 수어통역사 믿었다가 '형사처벌'

부산의 한 오피스텔에 차려진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진들의 사무실 모습. 부산경찰청 제공  부산의 한 오피스텔에 차려진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진들의 사무실 모습. 부산경찰청 제공 
"통장 석 달만 빌려주면 금융거래 실적 쌓아서 신용도도 올려주고, 용돈 20만 원도 받을 수 있대요"
 
같은 청각장애인이자 평소 수어통역사로 소통도 도와주던 A씨로부터 계좌를 빌려달라는 제안을 받은 청각장애인들은 큰 의심 없이 통장을 건넸다. 그렇게 건넨 통장은 불법 도박 자금 세탁을 위해 쓰였다.
 
범죄에 쓰일 줄도, 통장을 빌려주는 행위만으로 처벌받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통장을 내어준 청각장애인 87명은 하루아침에 경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전자거래금융법상 계좌를 타인에게 빌려줄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이들은 입건돼 결국 형사처벌을 받았다.
 

'최대 3200억 베팅' 불법 도박 가담자 무더기 검거 

부산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도박공간개설 등 혐의로 도박사이트 운영자, 고액 상습 도박자, 양방도박 관계자, 계좌 모집책, 통장 명의 대여자 등 172명을 검거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가운데 대포통장을 모집한 불법 도박사이트 핵심 운영자 2명과 상습도박자 3명, 수어통역사 A씨 등 6명을 구속했다.
 
이들 조직은 지난 2024년 1월부터 5월까지 부산의 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린 뒤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운영하며 53억 원 상당의 도박자금을 관리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 가운데 많게는 3200억 원을 베팅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박 계좌 명의자 추적했더니…상당수 청각장애인

해당 사건은 흔한 온라인 불법 도박 사건 가운데 하나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경찰은 고액·상습 도박자들의 입출금 계좌 내역을 확인하던 중 통장 명의자 상당수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을 수상히 여기고 추가 수사를 벌였다.
 
경찰 조사에서 청각장애인들은 도박을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만 지인에게 통장을 빌려준 적은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계좌 모집책들이 보관하고 있던 장부와 휴대전화. 부산경찰청 제공 계좌 모집책들이 보관하고 있던 장부와 휴대전화. 부산경찰청 제공  
경찰에 따르면 같은 청각장애인인 수어통역사 A씨는 홀덤펍에서 알게 된 양방도박 조직 관리자 B씨로부터 "계좌 모집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범행에 가담했다.
 
A씨는 청각장애인 2명과 함께 지역의 각 장애인협회와 센터 소속 청각장애인으로부터 계좌 80여 개를 모집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석 달만 통장을 빌려주면 금융거래 실적이 쌓여 신용 점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속여 계좌를 넘겨받았다. A씨는 계좌 1개당 불법 도박 조직으로부터 150만 원을 받은 반면, 정작 계좌를 내어준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이동비 명목으로 단돈 20만 원을 쥐여준 것으로 드러났다.
 

"취약계층 노린 악질 범죄"…재발 방지책 시급

경찰은 청각장애인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온 수어통역사가 범행에 가담해 취약계층을 범죄에 끌어들인 악질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대포통장 모집을 사전에 차단할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죄 조직이 신뢰 관계를 악용해 계좌를 모집하는 경우 이를 미리 걸러내기 어렵고, 통장 양도 자체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리는 금융교육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취약계층을 노린 지하경제 범죄 유통망을 끝까지 추적해 엄정 대응하겠다"며 "대가를 받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본인 명의 통장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대여하는 행위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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