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피움 제공성모 마리아의 피부는 왜 비현실적으로 희었을까.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푸줏간 그림은 정물화일까, 성화일까. 바지를 입고 누운 아내의 초상화를 남편은 왜 거실에 걸지 못하게 했을까.
신간 '시간이 흐르는 미술관'은 15세기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미술사의 주요 명화 31편을 100년 단위로 나눠 읽는 책이다.
이 책은 그림을 어렵게 만드는 미술 용어나 사조 설명보다, 그림이 태어난 시대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화가의 삶, 모델의 사연, 후원자의 욕망, 당대의 유행과 권력관계가 한 장의 그림 안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를 따라간다.
예컨대 장 푸케의 '세라핌과 케루빔에 둘러싸인 마돈나' 속 성모의 흰 피부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표현이 아니다.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피부를 높은 신분과 순결의 상징으로 여기던 15세기 프랑스·북유럽 사회의 미적 기준이 반영된 결과다.
헨리 8세의 가족 그림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왕비 제인 시모어가 등장한다. 살아 있는 가족을 기록한 초상이라기보다 왕조의 정통성과 후계 구도를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이미지에 가깝다.
일상의 그림에도 시대의 질서가 숨어 있다. '빵 굽는 사람' 속 빵 가게에는 상류층을 위한 흰 밀빵과 중산층 이하가 먹던 거친 빵이 나뉘어 놓여 있다. 그림 속 빵 한 조각에도 계급이 새겨져 있었던 셈이다.
책은 렘브란트의 파산을 '호기심의 방'이라 불린 수집 문화와 연결해 읽고,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의 바지 차림 초상화에서는 여성의 몸과 시선을 둘러싼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보수성을 짚는다.
이미경 지음 | 북피움
계단 제공"선생님, 교실에 CCTV 좀 달아 주세요."
다툼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은 화면을 찾는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누구 말이 맞는지, 카메라가 대신 판정해주기를 바란다. 교사는 알고 있다.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말도, 서로를 더 못 믿게 만든다는 말도 모두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쉽게 어느 한쪽에 밑줄을 긋지 못한다.
신간 '밑줄 긋지 못한 문장들'은 현직 교사인 저자가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말과 행동, 그 앞에서 흔들린 자신의 마음을 함께 적은 교육 에세이다.
책은 교실을 단순한 학습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눈치를 보고, 무리에 끼고 빠지며, 처음으로 '서른 명 중 하나'가 되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바라본다. 교과서에는 정답이 있지만 교실에는 쉽게 판정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매일 생긴다.
아이들이 볼펜 하나 때문에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장면도 그렇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예민함이나 인성 문제로 몰지 않는다. 형제자매와 다투고 화해해 본 경험이 줄어든 아이들에게 교실은 생애 처음으로 남과 몸을 부대끼는 장소일 수 있다고 본다.
급식실과 청소 시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같은 식판을 받아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태도를 드러내고, 누군가는 빗자루를 던지고 다음 일정으로 도망친다. 저자는 그것을 이기심으로만 보지 않는다. 어른들이 만든 빽빽한 시간표 안에서 아이들이 자기 식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고민도 현실적이다. 교사는 아침마다 휴대전화를 걷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그 기계로 영상을 만들고 낯선 세계와 연결되는 장면도 목격한다. 그래서 "진짜 세상은 밖에 있다"는 말은 어느 순간 목구멍에 걸린다. 그래도 다음 날 다시 휴대전화를 걷는다. 다만 그 이유는 전날과 같지 않다.
책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머물다가 자주 교사 자신에게 돌아온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가르치면서도 교무실의 불편한 장면 앞에서는 침묵하는 자신을 본다. 학생을 관찰한 기록은 어느새 교사 자신의 방관과 두려움, 오래된 상처를 들여다보는 고백이 된다.
조성현 지음 |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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