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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신망 세계 2위의 역설…AI 핵심 '프리폼'은 해외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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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용 케이블 수요 1년 새 77%↑…2029년까지 연평균 26% 성장
광섬유 부가가치 60~70% 프리폼에 집중…국내 자체 생산 단 1곳
中·美·日은 조달·R&D로 자국 산업 육성…韓은 맞춤형 지원 부재
"프리폼 핵심전략기술 지정하고 국가 기간망서 국산 수요 만들어야"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해저케이블 투자가 급증하면서 광섬유가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광섬유 부가가치의 60~7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 '프리폼'의 생산 기반이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에서 프리폼을 자체 생산하는 기업은 단 한 곳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범용 제품에 집중돼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광통신망을 구축하며 거대한 내수시장을 확보하고도 정작 고부가 핵심 소재 육성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AI용 케이블 수요 1년 새 77%↑…광섬유 가격도 '껑충'

17일 산업연구원의 'AI 시대에 주목받는 광섬유, 한국의 현주소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AI용 케이블 수요는 전년보다 77% 증가했다. 2029년까지 연평균 26%씩 성장할 전망이다. 전체 광섬유 수요에서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4년 5% 미만에서 2027년 약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광섬유 수요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동력은 AI다.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수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하나의 연산 클러스터처럼 연결해야 한다. 기존 구리 배선은 거리가 길어질수록 신호 감쇠와 발열, 전력 소모가 커지는 반면 빛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광섬유는 이런 제약이 적다.

이 때문에 광섬유는 데이터센터 내부는 물론 데이터센터 간 연결(DCI)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GPU 기반 AI 연산 노드에 필요한 광섬유는 기존 클라우드 대비 약 16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아마존, 메타 등 4대 빅테크의 올해 설비투자액도 약 7250억달러로 지난해 약 4100억달러보다 77% 증가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약 75%가 데이터센터와 전력 설비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저케이블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 세계 국제 데이터 트래픽의 95% 이상이 해저 광케이블을 거치는 가운데 2025~2027년 신규 해저케이블 투자는 약 130억달러로 직전 3년의 2배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기존 통신사업자에 더해 빅테크가 직접 투자에 뛰어든 영향이다.

수요 급증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CRU 글로벌 광섬유 가격지수는 2024년 3월 78.6에서 지난해 11월 88.7, 올해 1월 107.9로 오른 데 이어 3월에는 263.0까지 치솟았다. 중국 범용 광섬유 현물가격도 올해 3월 기준 전년보다 418% 급등했다.

부가가치 60~70% '프리폼'에 몰렸는데…국내 생산은 단 1곳

대한광통신 홈페이지 캡처대한광통신 홈페이지 캡처
문제는 국내 광섬유 소재산업의 경쟁력이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광섬유를 생산하는 주요 기업은 사실상 대한광통신과 LS전선 두 곳이다. 이 가운데 광섬유의 모재인 '프리폼'을 자체 생산하는 기업은 대한광통신이 유일하다. LS전선은 일본에서 프리폼을 수입해 광섬유로 가공하고 있다.

프리폼은 나노미터 수준으로 굴절률을 제어하고 불순물을 극도로 제거해야 하는 고난도 소재다. 생산 가능한 기업이 전 세계 약 20개사에 불과하다. 광섬유 제조원가의 60~70%도 프리폼이 차지해 사실상 프리폼 제조사가 공급망의 주도권을 쥐는 구조다.

그나마 국내에서 생산되는 프리폼도 고부가 제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광통신은 범용 제품과 데이터센터 내부 배선용 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 간 연결과 장거리 백본망에 필요한 초저손실·대유효면적 광섬유나 해저케이블용 광섬유는 양산하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제품인 다심 광섬유(MCF)와 할로코어 광섬유(HCF) 기술 역시 국내에서는 초기 단계다.

반면 미국 코닝과 일본 스미토모, 중국 YOFC 등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프리폼부터 광케이블까지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고 데이터센터 간 연결과 해저케이블용 광섬유, MCF 등 고부가 제품까지 양산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세계 광섬유 생산능력의 약 67%를 차지한다.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한 중국 기업들도 최근 MCF·HCF 등 프리미엄 시장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광통신망은 세계 최상위인데…핵심 소재 경쟁력은 뒤처져

기술 격차는 수출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의 광섬유 수출액은 2022년 5800만달러에서 지난해 2700만달러로 연평균 22.3% 감소해 세계 15위에 머물렀다. 같은 해 중국은 10억6천만달러로 세계 수출액의 31.1%를 차지했고 인도 4억4천만달러, 미국 4억3천만달러가 뒤를 이었다.

한국의 평균 수출단가도 2022년 kg당 81달러에서 지난해 63달러로 떨어졌다. 범용 광섬유에 수출이 집중되면서 인도산 등 저가 제품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높은 일본은 kg당 111달러 수준의 수출단가를 유지했다.

산업연구원은 이런 경쟁력 격차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각국의 산업정책을 꼽았다. 주요 경쟁국들은 공공 조달과 통신망 투자로 초기 시장을 만들고 연구개발과 생산 지원을 결합해 자국 기업을 키웠다는 것이다.

중국은 5G·FTTH망 투자와 설비투자 보조금, 세액공제 등을 병행해 세계 생산능력의 약 67%를 확보했다. 올해 1월부터는 정부조달 경쟁입찰에서 중국산 제품에 20%의 평가가격 우대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도 광대역 보급 사업에 '미국산 우선 구매법(BABA)'을 적용해 연방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미국산 광섬유 사용을 의무화했다. 안정적인 내수 수요를 만들어 해외 기업의 미국 현지 생산 투자까지 끌어냈다.

일본은 일찌감치 정부와 기업이 함께 원천기술 확보에 나섰다. 국영 통신사 NTT는 1970~1980년대 후루카와·스미토모·후지쿠라와 공동 연구를 진행해 1977년 프리폼 대량생산 공법인 VAD를 개발했다. 이후 자국 간선망에 이를 대규모로 적용해 초기 시장까지 만들어줬다. 현재 세계 광섬유의 60% 이상이 VAD 방식으로 생산된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광통신망을 갖추고도 이를 소재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2024년 말 기준 전체 인터넷 회선에서 광섬유 기반 회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90.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다.

그러나 정부가 지정한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200개에 광섬유·광통신 소재는 독립 분야로 포함되지 않았다. 국산 소재의 초기 시장을 만들어줄 조달 정책도 사실상 없어 거대한 국내 수요가 소재 공급망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AI 인프라인데 해외 의존"…프리폼 전략기술 지정 필요

산업연구원은 우선 고부가 광섬유 프리폼을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에 포함해 연구개발과 세제·정책금융 지원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프리폼 원료인 고순도 사염화규소와 도핑용 게르마늄 등 상류 원자재의 공급망 안정화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 초기 단계인 MCF와 HCF에는 정부 주도의 대형 연구개발을 추진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접속 부품과 광모듈 등 연관 생태계까지 함께 육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가 기간사업에서 국산 광섬유 소재 사용을 확대해 안정적인 초기 수요를 만드는 방안도 제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탁은명 연구원은 "현 구조가 지속될 경우 급성장하는 프리미엄 시장을 해외 선도기업에 내주고, 범용 저가 경쟁에 고착될 우려가 있다"며 "해저케이블 등 국가 기간망의 핵심 소재를 해외에 의존하게 되면 '공급망 안보' 측면에서도 취약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광섬유 소재 역량은 AI 데이터센터와 해저망 등 국가 디지털 인프라의 경쟁력과 공급망 안보를 뒷받침하는 토대"라며 "'광통신망 강국'의 위상을 소재산업 경쟁력으로 확장하기 위해 고부가 프리폼 제조 역량과 차세대 광섬유 기술을 중심으로 중장기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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