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중국이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직접 중재 역할에는 거리를 두면서 한국 정부와 미묘한 온도 차를 드러냈다.
"북미대화는 양국 사이 결정할 일"
5년 만에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0일 이재명 대통령을 예방하고 위성락 안보실장과 한중관계 및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 위 실장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 협력을 당부했고, 왕 부장은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왕 부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북미대화 중재 의향에 대해 "그것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결정할 일"이라며 "특히 미국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미대화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미국이 먼저 대북정책을 조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한반도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북미 간 직접대화라는 게 중국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북미대화를 성사시키는 '중재자' 보다는 북미 당사자 간 직접 협상을 지지하는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부가 기대하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와 중국이 스스로 설정한 역할 사이 온도차가 확인된 셈이다.
비핵화 끝내 언급 안 한 中
조현 외교부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방한한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비핵화 문제에서도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가 확인됐다. 왕 부장은 방한 기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대신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연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왕 부장은 비공개 회담에서 한국 측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을 묻기에 앞서 선제적으로 한반도 정책에 대해 '연속적', '안정적'이라는 표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상 핵보유국 지위를 가진 만큼 국제 비확산 체제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책임 있는 당사국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중국 측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중국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비핵화 원칙 후퇴 우려와 맞물려 한국 정부의 고민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당국자는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며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자제하는 게 국제 비확산 체제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중, 비핵화로 북한 자극할 이유 없어"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 역할에 소극적인 데에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미국을 견제하는 '대미 레버리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다. 여기에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경제적 밀착을 강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상황에서,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행사해 비핵화를 압박할 필요성도 과거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북중관계를 어렵게 복원한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다시 자극할 이유가 없다"며 "북한이 핵을 가지고 현재와 같은 포지션을 유지하는 게 중국의 대외전략을 펴는 데는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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