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올해 대형 담합 사건에 대한 제재가 잇따르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 규모가 크게 늘었다. 설탕과 밀가루, 전분·전분당 담합 3개 사건에 부과된 과징금만 1조8200여억원으로, 지난해 공정위가 부과한 전체 과징금의 5배를 넘어섰다.
대형 사건의 처리가 몰린 것과 별개로 제재 강도는 앞으로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여당이 형사처벌 의존도는 낮추는 대신 과징금 등 경제적·행정적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거래 제재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합 3건에 1.8조…지난해 전체 과징금의 5배
2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설탕과 밀가루, 전분·전분당 담합 3개 사건에 부과된 과징금은 1조8200여억원에 달한다. 지난 2월 설탕 담합에 4천여억원, 5월 밀가루 담합에 6700여억원이 결정된 데 이어 지난달 전분·전분당 담합에는 7400여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세 사건의 과징금만으로도 지난해 공정위가 한 해 동안 부과한 전체 과징금의 5배를 넘어선다.
공정위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과징금은 3402억원 수준으로, 이 가운데 담합 과징금은 2299억원이었다. 최근 3년간 연간 전체 과징금이 3천억~4천억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대형 담합 사건의 과징금 규모는 이례적이다.
아직 심의가 끝나지 않은 대형 사건도 남아 있다.
바이오연료 업체 7곳은 11년 넘게 9조7천억원대 입찰에서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증권사·은행 15곳도 76조2천억원 규모의 국고채 낙찰 과정에서 담합한 혐의로 공정위 심판대에 올랐다. 두 사건 모두 심사관의 제재 의견이 제시된 단계로 최종 과징금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올해 대형 담합 사건의 처리가 몰린 데 특별한 정책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담합 사건은 조사부터 심의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건 종결 시점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형벌은 줄이고 경제적 제재는 강화
대형 사건의 처리 시점과 별개로 공정거래 제재체계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본격화하고 있다. 방향은 형벌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과징금과 이행강제금 등 경제적·행정적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여당에서도 관련 입법이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부 위반행위를 곧바로 형사처벌하기보다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우선하고, 공정위 조사에 불응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과징금과 이행강제금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 등에서도 형사처벌을 줄이는 대신 행정제재를 우선하거나 과징금 상한을 높이는 개정안이 여당에서 발의됐다.
결국 올해 과징금 급증이 대형 사건의 처리 시점이 겹친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앞으로는 제도 개편을 통해 경제적 제재 자체가 강화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과징금 넘어 지분매각까지…'구조적 조치' 추진
공정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반복적인 담합이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지분매각이나 영업양도까지 명령할 수 있는 '구조적 조치'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과징금이나 시정명령만으로 경쟁질서를 회복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보완수단이다. 다만 어떤 위반행위에 어느 정도까지 적용할지 구체적인 발동 요건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 3일 하반기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특성에 맞는 시정조치를 취하기 위해 구조적 조치라는 보완적인 수단을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취재진과 만난 공정위의 다른 관계자는 "실제 발동 자체보다는 이런 수단을 갖춰놓는 데서 오는 억지 효과도 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사한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일반적인 시정조치만으로 경쟁질서를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 구조적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도 사적 독점·부당한 거래제한에 사업 일부 양도를 명령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독점 사건에서 법원이 기업분할이나 자산매각 같은 구조적 구제를 명령한 전례가 있다.
관건은 입법이다. 관련 법안들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형벌 합리화의 중심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난 2월 정무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아직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8월 임시국회에서도 쟁점 법안을 둘러싼 필리버스터 등 여야 대치가 이어지고 있어 상임위 심사 속도와 원내 상황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공정위 쪽은 쟁점이 크지 않은 만큼 빨리 논의해야 할 과제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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