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오디세우스의 목적지는 이타카였다. 트로이 전쟁은 10년 만에 끝났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다시 10년이 걸렸다. 귀향길에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기다렸다. 한쪽에는 여섯 머리의 괴물. 반대쪽에는 배를 집어삼키는 소용돌이. 한쪽을 피하면 다른 쪽에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주택정책도 비슷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1일 국무회의에서 주택 공급에 다시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수도권 주택 인허가가 2022년부터 갑자기 절반 이하로 줄면서 공급절벽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한 채라도 지을 수 있으면 신속하게 발굴해 최대한 빨리 인허가와 착공, 건축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직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공급 확대는 가장 익숙한 해법이다. 필요한 집을 충분히 지으면 된다. 어디에 지을지부터 어려워진다. 누가 살 집인지도 정해야 한다. 가격과 방식까지 들어가면 이해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용산공원이 한 사례다.
정부는 이미 건물이 들어선 일부 '훼손된' 부지에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을 공급하려 한다. 서울시와 두 차례 머리를 맞댔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서울 한복판이다. 직장과 교통 접근성도 좋다. 공공임대 입지로는 나쁠 이유가 없다. 청년 사이에서는 평생 임대주택에 살아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곽에 지으면 청년을 변두리로 밀어낸다는 비판을 받는다. 도심에 지으면 기존 주민과 충돌한다. 임대로 공급하면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분양을 늘리면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란이 생긴다. 스킬라를 피하면 카리브디스다.
청년의 생각은 숫자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71.7%였다. 가장 필요한 주거정책으로는 주택구입자금 대출이 31.3%로 가장 많이 꼽혔다. 전세자금 대출 25.0%, 월세 등 주거비 지원 20.7%, 공공임대 공급 14.9% 순이었다. 공공임대를 거부하지 않는다. 내 집 마련도 포기하지 않는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 7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18~29세 가운데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의 주택이 있다는 응답은 8%였다. 같은 연령층의 71%는 앞으로 1년간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30대의 주택 보유율은 42%에 그쳤다. 집값 상승을 예상한 비율은 72%에 달했다. 집은 없다. 집값은 더 오를 것 같다.
불안은 개별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스며든다. 고시원 욕조 규제를 풀겠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버스하우스'에 이어 청년에게 고시원에서 살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고시원 규제 완화는 지난 5월 29일 한 언론의 단독 보도로 이미 알려진 사안이다. 8·13 공급대책이 나오기 두 달여 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도 현실 앞에서 항로를 바꿨다. 지난달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실거주를 기준으로 1주택자의 세 부담을 달리하는 방향이었다.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는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낮춘다. 실거주 1주택자는 14억원으로 높인다.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도 보유기간 공제를 없애고 거주기간에 따른 공제만 남기는 내용이었다.
직장·교육·돌봄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자기 집에 살지 못하는 1주택자까지 세 부담이 커질 수 있었다. 여당에서도 제동을 걸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월세 시장까지 연쇄 반응을 미치는 부분을 특히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차인 퇴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종부세 강화에도 "깊이 있는 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29일 만에 정부가 물러섰다. 1일 국무회의에서 비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를 현행 12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세 부담 상한을 150%에서 200%로 높이려던 방안도 접었다. 원칙은 단순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책은 달랐다. 받아들이는 서사는 하나였다. 지금보다 나은 집으로 갈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불안이다.
주택정책의 목적지는 분명하다. 주거안정이다. 자가만이 답일 수 없다. 임대만이 답일 수도 없다. 당장 안정적으로 살 집도 필요하다. 언젠가 자기 집을 마련할 기회도 필요하다. 형편이 나아지면 더 나은 집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오디세우스에게 모두를 지킬 수 있는 항로는 없었다. 배 전체를 삼킬 카리브디스 대신 스킬라 쪽으로 향했다. 대가는 선원 여섯의 목숨이었다. 어느 쪽도 온전한 선택은 아니었다. 주택정책도 다르지 않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지는 없다. 선택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대통령은 한 채라도 더 짓겠다고 했다. 한 총리는 직까지 걸겠다고 나섰다. 몇 채를 더 짓느냐만큼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주택정책의 이타카에서는 지금보다 나은 다음 집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살 집이 보이고, 다음에 옮겨갈 집도 보여야 한다. 지금은 이타카가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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