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김창원 고수. 이우섭 기자"가정을 이뤘고, 회사에도 다니고, 열심히 살고 있어."50살 한국인 회사원 '김창원'이 27살 부룬디 청년 '버징고 도나티엔'에게 건넨 말이다.
도나티엔은 2003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부룬디 국립대학교 소속 마라톤 선수로, 당시 대구에서 열렸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했다.
고국에서는 매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부룬디는 아프리카 동남부에 있는 나라로,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다. 1993년 시작된 혼란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도나티엔은 15살 때 부모님을 잃기도 했다.
한국은 부룬디에 비해 무척이나 안전한 나라였다. 대회 기간 만난 한국인들의 친절함도 인상 깊었다.
도나티엔은 한국에 남기로 결심했다. '난민 신청 제도'를 활용했다. 난민 지위를 얻기까지는 힘든 삶을 이어가야 했다. 서울에서 인쇄소 회사, 시계 공장 카메라 렌즈 회사 등을 전전했다.
2005년 난민 지위를 취득했고, 2010년에는 귀화에 성공했다. 더 이상 '도나티엔'이 아닌, '김창원'으로 불리게 됐다. 한국어는 물론, 역사와 문화까지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라톤 실력으로는 한국을 평정했다. 국내에서 열렸던 수많은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웬만하면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07년에는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18분 39초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마스터즈 역사상 최초의 풀코스 2시간 10분대 기록이다.
최고의 러너 경지에 오른 김창원 고수(高手)는 현재 경남 창원 소재 현대위아에 재직 중이다. 해외 통관 업무를 담당하면서, 사내 마라톤 동아리 에이스로도 활약 중이다.
김 고수는 최근 '페이스메이커'와 인터뷰를 통해 더 자세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귀화 당시 김창원 고수. 법무부 제공·연합뉴스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었다. 우선 역사, 문화 등을 이해하려 했다. 현재는 한국에 대해 80%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난민 지위 획득 과정, 귀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언어 문제가 가장 컸어요. 한국어는 다른 나라 언어에 비해 정말 어려웠어요. 프랑스어, 영어 보다도요. 외국인으로서 한국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말이 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많이 힘들었습니다."
귀화에 성공했을 당시 기분을 물어보자,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한국에서 살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돌이켰다. 현재 한국어 구사 능력은 수준급이다.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자, 다시 학구열이 불타올랐다. 사실 김 고수는 부룬디 유명 대학교 출신이다. 부룬디 국립대학교는 현지에서 가장 큰 대학교다.
"공부를 잘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죠. 한국 왔을 때 아쉬웠던 점은 대학교 4년을 마치지 못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경남대학교에 편입해서 학사를 땄어요."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김 고수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지도 교수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석사, 박사 학위도 땄습니다."
'러닝 인터뷰' 당시 몸 풀고 있는 김창원 고수. 이우섭 기자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창원에 자리 잡은 김 고수에게, 창원은 단순한 '사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김창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계속 살았다면 '김서울'이 됐을 수도 있냐고 묻자,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한국 왔을 때는 서울에 살았어요. 창원에는 지인들의 소개로 오게 됐습니다. 저와 아내가 친한 사람들이 창원에서 많이 챙겨줬어요. 그래서 김창원으로 이름을 정했습니다."2014년에는 부룬디 국적의 여성과 결혼했다. 현재는 세 아들의 아빠이기도 하다. 큰 아들은 농구를 한다. 둘째 아들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막내아들은 아직 운동하기에는 어리지만, "그럼 마라톤을 시켜야 하나?"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 고수는 대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했다. 한국에 온 지도 어느덧 27년이 지났다. 그때 '도나티엔'에게 김 고수는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을까.
"많이 변화됐고 바뀌었습니다. 나이도 많이 들었고요. 2003년 도나티엔은 20대였는데, 현재 김창원은 50대가 됐어요. 한국에서 가정을 이뤘고, 회사도 다니면서 참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 부분을 20대의 도나티엔에게 말해주고 싶어요."20여 년 전, 전쟁의 공포를 피해 한국 땅을 밟았던 부룬디 청년은 이제 한국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름도, 국적도, 직업도, 가족도 달라졌다.
2026년 김창원 고수(왼쪽)와 2011년 김창원 고수. 이우섭 기자·경남대 제공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달리는 것이다.
"마라톤을 안 했으면 아마 한국에 살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지금처럼 못 살고 있었겠죠. 뛰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어요. 많이 배웠고요."김 고수의 삶에서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으로 향하는 계기가 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했으며, 지금까지도 일상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인생 역시 마라톤과 닮아 있다. 쉽게 결승선에 도착한 적이 없었다. 때로는 멈춰야 했고, 다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27살의 도나티엔은 그렇게 50살의 김창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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