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70대 세계 1위 마라토너,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언젠가는 그분을 만날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1955년생 마라토너 신행철 고수(高手)는 최근 세계 마라톤 역사를 새로 썼다. 만 71세의 나이로 풀코스(42.195㎞) 2시간 54분 10초를 기록하며 70~74세 연령대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 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를 뜻하는 '서브3'만 지금까지 14차례 달성했다.
꾸준한 자기 관리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기록이다. 신 고수는 최근 '페이스메이커'와 만나 세계 기록 뒤에 숨겨진 평범한 일상 얘기를 들려줬다.
밤 9시에 취침, 새벽 3시 기상…루틴은 선택이 아닌 약속
신 고수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알람을 듣고 깨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습관 덕에 반사적으로 기상하게 된다.
"일찍 일어나면 조금 힘들긴 한데요,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이게 하루이틀이 아니고, 수십 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 시간만 되면 눈이 떠집니다."
이른 새벽부터 달리고 있는 신행철 고수와 목동마라톤교실 회원들. 이우섭 기자이날도 신 고수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어김없이 아침 훈련을 소화했다. 후배 러너들과 함께 약 1시간 넘게 16㎞ 이상을 달려야 하는 힘든 일정이었지만, 크게 무리는 없었다.
"일찍 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저녁 약속을 안 나가요. 저녁에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게 1년에 10번이나 되려나…"
'칼퇴'하는 대표님…내일 아침 뛰어야 하니까
사실 신 고수는 러너이기 이전에 현재 한 건설 회사의 대표다.
20대 중반 모 대기업에 입사해 15년 동안 재직한 뒤,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건축과 관련된 자재 생산과 더불어 국내외 시공 업무도 맡고 있다. 주로 공항, 자동차 공장, 미군 부대 등의 건축물 지붕 방수 공사를 진행한다.
회사 대표지만 저녁 회식 등은 참석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다음 날 새벽에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담배는 한 번도 피워본 적이 없어요. 술은 예전에야 조금씩 마셨는데, 점점 줄였고 이제는 먹지 않아요. 최근에 세계 기록도 세웠기 때문에 술은 더욱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소설가 하루키,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연합뉴스신 고수의 하루 일상은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하다. 하루키 역시 새벽부터 기상해 하루를 열고, 빨리 잠에 드는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다.
"하루키, 그분하고 일상이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저는 밤 9시면 자고 새벽 3시면 일어납니다. 그분도 9시 전후로 자서 새벽 4시쯤 일어난다더라고요. 수면 리듬이 비슷해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단순 생활 패턴만이 아니다. '러너'로서의 자부심도 통한다.
실제로 신 고수는 50대 중반부터 마라톤에 도전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서브3 기록만 14차례 세웠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마라토너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문장을 새겨 넣고 싶다고 말했다. 100㎞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분은 보통 오전에 집필 활동을 하고, 오후에 뛴다고 하네요. 저는 오전에 뛰고 남은 시간에 일을 하죠. 또, 하루키는 하루에 보통 10㎞를 뛰는데, 저는 17㎞를 뜁니다. 그분의 풀코스 기록은 3시간 30분대, 저는 2시간 54분대고요."
달리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SNS 캡처신 고수는 하루키를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분과 저는 몇십 년 동안 계속 똑같은 루틴으로 살아왔어요. 그 결과 하루키는 위대한 소설가가 됐고, 저는 세계 기록을 남긴 마라토너가 됐어요. 제가 1955년생이고, 그분이 1949년생이니 저보다 6살 형님이십니다. 언젠가는 만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저도 애 같은데요, 뭘"
나이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언제나 행동을 조심하려고도 한다. 또 세계 기록 보유자로서 책임감도 지녔기 때문에, 더욱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나이가 70세가 넘어도 애 같아요. 나이가 드니까 '사회의 어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래서 어딜 가든 조심하려고 신경 씁니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모범이 될 만한 언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신경 쓰고 있어요. 세계 기록자로서 나름의 책임감도 있죠. 언제나 제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몸 상태를 가져야 해요."
그럼에도 신 고수는 젊은 세대에게 '꾸준한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엇을 하든 꾸준하게 하면 좋겠어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중단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일상을 관리할 수 있는 루틴을 만드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당장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날 겁니다."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는 면에서는 세밀하고 엄격하지만, 가족들 특히 두 손주 앞에서는 영락없는 자상한 할아버지다. 손주들 이야기가 나오자, 이내 아이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을 휘감았다.
"보스턴 마라톤을 뛸 때, 손주들이 같이 와서 제가 뛰는 모습을 봤어요. 저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도 제가 나온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고 조회수를 체크해요."
"손주들하고 풀코스를 같이 뛰자고 약속을 해둔 상태입니다. '같이 뛰자'는 답변을 받기는 했는데,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네요. 그래도 한 번 같이 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세계 대회 한 번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70대 세계 1위' 마라토너 신행철 고수가 훈련 중이다. 이우섭 기자
한 번 세계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러너로서 목표는 더욱 선명해졌다.
우선 모든 세계 대회 70대 그룹 최강자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보스턴, 도쿄 마라톤에서는 이미 70대 그룹 우승을 차지했어요. 올해 베를린, 뉴욕, 상하이 마라톤까지 세 군데 초청받아 참가가 확정됐습니다. 거기서도 70대 그룹을 한 번 정리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또 올여름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도 도전한다.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마스터즈 육상경기대회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신 고수는 총 7개 종목에 나선다. 목표는 금메달 5개 이상이다.
"제 나이 그룹에서 저의 기록이 좋은 편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트랙 경기는 또 모르죠. 유럽, 미국, 아프리카, 일본 등 잘 뛰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장담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나는 마라톤 세계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신 고수가 기자에게 선물한 '70대 세계 기록' 기념 모자. 이우섭 기자신 고수는 멈출 생각이 없다.
"달리기에 은퇴 시기가 어디 있습니까?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지. 맥아더 장군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했잖아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특별한 비법은 없다. 수십 년 동안 같은 하루를 반복했을 뿐이다. 매일 새벽 3시에 눈을 떴고, 남들이 자는 시간 러닝화를 신는다. 이 패턴이 어느새 세계 기록을 만들어냈다.
"꾸준히 하면 결국 차이가 납니다."신 고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새벽 3시에 러닝화 끈을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