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①농부의 감(感), 데이터가 되다 ②우유 관세 0%, 소는 로봇이 지킨다 ③겨울 딸기가 여름을 열었다
|
국내 딸기 시장에서 국산 품종은 지난 2005년 해도 9.2%에 불과했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1월 4일 낸 '숫자로 보는 한국 딸기' 자료에 따르면 국산 품종 보급률은 2010년 61.1%로 외국 품종을 역전했고 2021년 96.3%까지 올랐다. 그 중심에 충남농업기술원이 개발한 '설향'이 있다. 품종을 되찾은 딸기는 수출 1위 농산물이 됐다.
퍼밋에서 재배중인 딸기. 노컷TV 허태환 PD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식품수출정보(KATI) 수출 통계 기준으로 지난해 딸기 수출액은 7201만 달러(약 1천억 원)로, 농진청이 같은 자료에서 밝힌 2005년 수출액 440만 달러의 16배에 달한다. 관세청이 7월 16일 낸 상반기 과일 수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딸기 수출은 6049만 달러로 15.8% 늘어 과일 수출액의 63%를 차지했고, 그중 59%가 싱가포르와 태국 두 나라로 갔다. 이 시장 대부분은 협정 안에 있다. 산업통상부 집계로 한국은 올해 5월 기준 23개 협정·60개국과 FTA를 맺고 있고, 딸기가 가는 동남아 시장은 대부분 체결국이다.
그런데 이 수출 1위 품목에는 계절의 벽이 있다. 딸기는 겨울 작물이라서 더위에 무른 과육이 버티지 못해, 국산 딸기의 생산도 수출도 12월에서 봄 사이에 몰린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여름이면 국산 딸기는 매대에서 거의 사라진다.
계절만의 문제가 아니다. 길러낸 딸기를 파는 유통 과정에도 비용이 붙는다. aT가 조사한 2023년 농산물 유통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산물 소비자 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몫은 49.2%에 이른다. 밭에서 1천 원인 농산물이 매대에서 2천 원이 되는 구조다. 수입 농산물과 같은 매대에서 만나는 시대에는 산지의 품질만큼 판매하는 유통과정이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절과 판로, 그 두 문제를 한 도시 안에서 풀고 있는 현장이 있다. 취재진이 8월 11일 찾은 경기 이천의 한 물류센터 3층에서는 LED 조명 아래 딸기가 자라고 있었다. 계절을 넘어선 수직농장이다. 같은 이천에는 판매 데이터로 품목별 수요를 예측해 산지 물량을 배정하는 물류센터가 있다. 여름에 딸기를 길러내는 수직농장 기업과, 농산물이 팔릴 곳을 먼저 계산해 골목까지 실어 나르는 유통 기업이 그 현장이다.
한여름의 딸기밭은 3층에 있다
수직농장에서 재배하는 딸기 상태를 체크하는 퍼밋 박선기 대표. 노컷TV 허태환 PD
수직농장 기업 퍼밋의 박선기 대표는 2017년 회사를 세웠다. 9년째 딸기를 다뤄 온 그의 결론은 딸기가 농사 중에서도 유독 까다로운 작물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엽채류는 관리가 4단계면 끝나는데, 딸기는 12~13단계까지 관리해야 한다. 과피가 없어서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까다로운 작물을 실내 수직농장이라는 더 까다로운 환경에서 키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직농장은 오랫동안 경제성이 맞지 않는 농사로 통했다. 전기로 해를 만들고 냉방으로 계절을 만드는 비용 때문이다. 퍼밋은 그 문제를 조명에서 풀었다고 설명한다.
노컷TV 허태환 PD박 대표는 현장 인터뷰에서 물로 열을 식히는 수랭식 LED를 달고 그 열을 회수해 쓰면서 에너지를 종전보다 38% 아꼈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에너지 효율화로 경제성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경제성이 맞자 계절이 뒤집혔다. 국산 딸기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여름에 퍼밋의 딸기는 카페와 디저트 업계, 대형 온라인마켓으로 팔려 나간다. 박 대표는 현장 인터뷰에서 수요가 공급을 웃돌아 시설을 늘리는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팔 곳을 먼저 아는 유통, 이천 산지이음센터
여름 딸기를 만드는 일과 파는 일은 다른 문제다. 그 파는 길의 실물은 같은 이천, 농식품 유통기업 '미스터아빠'의 산지이음센터에 있다.
미스터아빠 현장 담당 성복진 씨가 키오스크 작동 시연을 하는 모습. 노컷TV 허태환 PD입고장에 선 화물기사가 키오스크 화면을 누르자 상품 코드가 찍힌 라벨이 출력된다. 종이 전표로 하던 입고 접수를 전산으로 바꾼 자체 개발 장비다. 현장 담당 성복진 씨는 "기사님이 키오스크로 접수하면 라벨이 나오고, 저희는 PDA로 찍어서 검수한다"고 설명했다. 안쪽에서는 입고된 원물을 지점별 물량으로 배정하는 '로더'와 전자태그(RFID)를 단 소분 작업대가 돌아간다. 사람이 하던 판단을 기계와 코드가 하나씩 넘겨받는 중이다. 완성된 전시장이라기보다는 표준을 만들어 가는 공사중인 현장에 가깝다.
이 센터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aT의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 거점물류 지원사업 운영 시설로 선정돼, 산지에서 올라온 농산물이 경매장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거래로 골목 슈퍼와 식당까지 가는 구조에서 보관·소분·배송을 맡는 물리적 거점 역할을 했다.
입고된 물품을 전자태그(RFID)로 분류하는 모습. 노컷TV 허태환 PDaT는 올해 9월부터 이천·강릉·대구·광주 4개 권역에 거점물류센터를 두는 시범사업을 가동하기로 했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11월 5일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온라인도매시장 연간 거래액은 11월 3일에 이미 1조 원을 넘어 전년 같은 기간의 2.9배로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정보센터에 3월 4일 게재된 연구자료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 유통의 핵심 경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1조 2천억 원대로 전년(6737억 원)보다 80% 넘게 늘었다. 온라인도매시장 자체는 FTA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내 유통 정책이다. 그러나 개방 시대에는 판로가 곧 가격 방어력이다. 유통 단계가 하나 줄면 그만큼이 산지의 몫과 매대의 경쟁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거점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 서준렬 미스터아빠 대표는 노컷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핵심이 수요 예측이라고 밝혔다. 자체 AI 시스템이 지역·품목·시기별 판매 데이터를 학습해 '무엇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팔릴지를 계산하고, 그 예측에 맞춰 산지 물량을 조달·소분해 전국 거점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 구조로 생산자 수취가는 3~5%포인트, 골목 슈퍼 등 중소상인의 수익성은 5%포인트가량 개선되고 물류비는 20% 효율화됐다고 설명했다.
퍼밋과의 연결도 이 지점에서 이뤄진다. 서 대표는 "AI가 수요를 예측하고, 그 수요만큼 생산해, 365일 골목상권에 공급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여름 딸기가 어느 동네에서 얼마나 팔릴지를 먼저 계산하고 그만큼 기르는 것이다. 그는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에 대해서는 "국산 농산물이 수입 농산물과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aT의 온라인도매시장 거점물류 지원사업 운영사로 선정됐고, 서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전국 51개 거점을 운영한다.
농장이 바다를 건넌다, 종자와 시스템의 수출
국내 판로가 데이터로 넓어졌다면, 해외 판로는 종자가 연다.
퍼밋의 수출은 딸기 상자가 아니라 농장 자체를 보내는 방식이다. 전략은 기후에 따라 갈린다. 박 대표는 "겨울이 있는 나라는 비닐하우스, 겨울이 없는 나라는 수직농장입니다"라고 전했다. 겨울이 있는 우즈베키스탄에는 온실 재배 시스템을, 사계절 더운 싱가포르에는 수직농장을 이식해 현지에서 기르고 현지에서 판다. 운송 중에 무르는 딸기의 약점을 아예 우회하는 모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마트에서 판매중인 퍼밋 딸기. 퍼밋 제공
이 모델이 성립하는 전제가 품종이다. 박 대표는 설향·금실 같은 국가 개발 품종은 해외 반출이 막혀 있어 무단으로 가져가면 밀수가 된다고 짚었다. 퍼밋이 자체 개발 품종을 쓰는 이유다. 그는 "우리 품종이니까 우리가 관리한다. 몇 주가 나갔고 얼마가 들어와야 하는지 딱딱 계산이 된다"고 덧붙였다.
해외 농가가 늘수록 로열티가 쌓이는 구조라서, 박 대표는 현장 인터뷰에서 연 15만 달러 수준인 로열티 수입이 내년에는 5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20년 전 일본 품종에 로열티를 내던 한국 딸기가 국산 품종으로 시장을 되찾았다면, 이제는 로열티를 받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국경을 넘는 순간 협정의 유무가 비용이 된다. 박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관세 부담을 겪었다며 "우즈베키스탄은 아직 FTA가 맺어져 있지 않다. 특별한 혜택보다는 오히려 관세를 많이 냈다. FTA가 체결된다면 굉장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산업통상부가 6월 26일 공개한 장관 면담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우즈베키스탄과 새 형태의 무역협정인 STEP(지속가능한 무역·경제 동반자협정) 체결을 추진해 왔고, 우즈베키스탄의 WTO 가입 뒤 협상을 재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싱가포르에 대해서는 "관세가 조금 더 저렴하다"고 전했다. 협정이 없는 시장의 비용을 이 회사는 관세 고지서로 경험하고 있다.
인터뷰 중인 퍼밋 박선기 대표. 노컷TV 허태환 PD관세를 대신 낼 수는 없어도 정부가 거드는 자리는 따로 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퍼밋은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의 연구 과제와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창업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정부에 바라는 것은 하나로 모인다. 박 대표는 현장 인터뷰에서 수출 확대를 위한 지원, 특히 수출바우처의 확대를 꼽았다.
판로가 넓어질 때, 개방은 일방통행이 아니게 된다
여름의 딸기가 계절의 한계를 넘고, AI 유통이 골목까지의 거리를 줄이고, 종자와 시스템이 국경을 넘는다. 세 갈래 모두 같은 문장으로 수렴한다. 판로가 곧 가격 방어력이라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1월 12일 발표한 2025년 K-푸드 플러스 수출 실적에 따르면 수출액은 136억 2천만 달러로 역대 최고였고, 역대 최고 실적 품목 명단에는 딸기와 포도가 나란히 올랐다. 수입 매대가 넓어진 지난 20년은 한국 농업이 밖으로 나가는 길을 닦은 20년이기도 했다.
기르고 나서 팔 곳을 찾는 것이 지금까지의 농사였다면, 이천의 두 회사는 그 순서를 뒤집는 중이다. 팔릴 곳을 먼저 계산해 그만큼 기르고, 협정이 열어 둔 길을 따라 종자와 농장째 국경을 건넌다.
물론 어느 쪽도 완성형은 아니다. 물류센터의 자동화는 아직 공사 중이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길에는 협정 없는 관세가 남아 있다. 그러나 판로는 원래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넓혀 가는 것이다. 여름에도 딸기가 열리고 골목 슈퍼가 산지와 직접 만나는 지금, 한국 농산물이 설 수 있는 매대는 어제보다 넓어졌다.
※ 본 기사는 2026년 FTA교육홍보지원사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