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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소년, 간첩 몰려 52년 사찰당해도…"못 막은 책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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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국가 보호의무 위반 책임은 1심 이어 항소심도 불인정
귀환 후 불법구금·수사·사찰 배상액 일부 증액 결정
법원 "국가 이름의 폭력,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책임 통감"
김춘삼 대표 "정부, 국회 특별법 제정 등 실질적 피해 회복"

김춘삼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시민모임 대표와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가 17일 오후 춘천지법 앞에서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발언하고 있다. 구본호 기자김춘삼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시민모임 대표와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가 17일 오후 춘천지법 앞에서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발언하고 있다. 구본호 기자
동해안에서 조업 중 북한에 납북됐다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려 불법구금과 수사 등을 당한 납북귀환어부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납북 당시 국가의 국민 보호의무 위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귀환 이후 불법구금과 수사·사찰 등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따른 국가배상액을 일부 증액하고,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제2민사부(심영진 부장판사)는 17일 동해안 납북귀환어부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일부 원고들의 위자료를 1심보다 증액했다.

이들 가운데 김춘삼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시민모임 대표는 1971년 만 15세의 나이로 어선 '제2승해호'에 승선했다가 동해상에서 북한에 납북됐다. 약 1년 만에 귀환했지만 수사기관에 의해 장기간 불법구금돼 조사를 받고 간첩 혐의로 처벌됐다.

재판부는 각 사건에서 1심 판결 가운데 추가 지급을 명한 금액에 해당하는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국가가 일부 원고들에게 200만 원에서 최대 2천만 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날 사건의 쟁점을 크게 귀환 이후 불법구금과 수사·사찰 등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과 납북 당시 이를 막지 못한 데 따른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 책임으로 나눠 설명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귀환 이후 불법구금과 수사, 사찰 등에 대한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에 대한 책임은 인정했다.

그러나 납북 자체를 막지 못한 데 따른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원고 측이 요구한 입증책임 전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재판부는 원고 측 요청에 따라 문장열 전 국방대학교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당시 해상경비 상황 등에 관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일부 피해자에 대한 당사자 신문도 진행했다.

문 전 교수는 "1971년 당시 한국 해군은 북한의 어선 납북을 저지하거나 구출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한미연합 전력을 고려하면 북한보다 충분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다"며 국가의 구조 실패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다만 재판부는 귀환 이후 국가폭력에 따른 위자료 액수에 대해서는 1심 재판부별 인정 금액에 편차가 컸던 점과 개별 피해 정도, 다른 과거사 국가배상 사건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일부 원고의 배상액을 상향 조정했다.

2023년 5월 춘천지법에서 열린 납북귀환어부 재심 사건 무죄 선고 이후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2023년 5월 춘천지법에서 열린 납북귀환어부 재심 사건 무죄 선고 이후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
재판부는 선고 말미 피해자들에게 사법부 차원의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심 부장판사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잔혹한 폭력으로 너무도 오랜 세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원고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위법한 수사에 기초해 내려진 유죄 판결이 재심을 통해 바로잡힐 때까지 겪었던 불명예와 고통 등에 대해 사법부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추진 중인 특별법 제정을 언급하며 "이번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에 그치지 않고 여러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하루빨리 더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선고 직후 "당시 국가가 보호의무를 다했다는 자료를 대부분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입증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부담시킨 부분은 아쉽다"며 "당사자들과 상의해 상고와 헌법소원 등 가능한 권리구제 절차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7세의 나이에 납북돼 고초를 겪은 전두조씨는 "52년 동안 사찰을 받고 고문까지 당했는데 적은 금액으로 보상하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하루빨리 억울한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피해 회복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김춘삼 대표는 "53년 동안 사찰과 감시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민사소송을 통한 피해 회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특별법 제정 등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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