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특구 특별법 관련 사회적 대화 제안하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 테이블 복귀를 시도하면서 27년간 '반쪽'에 머물렀던 사회적 대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메가특구특별법 노동 특례를 둘러싼 갈등이 역설적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과 산업 전환으로 노동시장 자체가 빠르게 바뀌면서 노사정이 새로운 노동 질서를 함께 논의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21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메가특구특별법 노동 특례를 논의하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한 데 이어 대의원대회를 열어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대의원대회는 내달 7일 개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의 뇌관이 오히려 대화의 문 열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연합뉴스민주노총은 지난 17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에 들어가서 52시간 예외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추진을 막고 4.5일제를 추진하라고 주장해야 한다"며 테이블 안에서 반대 입장을 직접 밝히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메가특구법 노동 특례는 지난 7월 말 윤곽이 알려진 이후 노정 관계의 최대 갈등 현안으로 떠올랐다. 양대노총은 공동성명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대결의 길"을 경고했고, 민주노총은 특례 조항을 뺀 '제로베이스' 논의를 요구하며 맞서 왔다.
정부가 제안한 원포인트 대화에 참여하기로 한 것도 노동 특례 확대를 저지하려면 대화 테이블에서 직접 반대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갈등의 진앙이던 의제가 역설적으로 사회적 대화 복원의 계기가 된 셈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메가특구 문제를 오히려 사회적 대화 촉진 계기로 삼자"고 말한 바 있다.
다음 단계는 경사노위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놓고 합의제 운영, 산별 참여 보장, 명칭 변경 등 세 가지 원칙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양 위원장은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최종 판단을 맡기기로 했다.
27년간 '반쪽' 사회적 대화…이번엔 다를까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결정되면 1999년 노사정위원회 탈퇴 이후 27년 만의 공식 복귀가 된다. 그동안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이 빠진 채 운영돼 왔다.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998년 1월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는 그해 2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 등을 담은 첫 사회협약을 이끌어냈다. 민주노총에서는 합의안에 대한 내부 반발이 거셌고 이듬해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사회적 대화의 첫 장이 노동계에 '양보만 강요당했다'는 기억으로 남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회적 대화의 판 자체를 다시 짰다. 노사정위원회를 경사노위로 개편하고 정책을 '심의·협의'하는 기구로 성격을 바꿨다. 업종별위원회를 둘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민주노총도 복귀 문턱까지 간 적이 있다. 2018년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여해 복귀를 논의했고, 2019년 1월에는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대의원대회에 올렸지만 내부 이견으로 의결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요구에 맞춰 개편된 경사노위는 정작 민주노총 몫을 비워둔 채 출범했고, 그 뒤로도 반쪽으로 운영됐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도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도됐다. 민주노총까지 참여해 합의안을 만들었지만 내부 추인이 무산됐다. 민주노총은 최종 협약에서 빠졌다. 위기 때마다 대화가 시도됐지만 민주노총 탈퇴 이후 노사정의 주요 주체가 모두 참여하는 제도적 사회적 대화는 정착하지 못한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민주노총이 이번에 내건 세 가지 원칙이 기존 경사노위 제도와 완전히 동떨어진 요구는 아니라는 점이다. 숙의를 통한 합의제 운영은 사회적 대화의 운영 방식에 관한 문제이고, 산별 참여 역시 업종별 논의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여지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의 현재 요구는 경사노위 운영 원리와 관련해 심각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며 "만약 들어온다면 그런 요구들은 전부 큰 무리가 없고, 충분히 그렇게 진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동부도 민주노총이 제기한 개선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전한 상태다. 다만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27년 만의 결단을 조직에 설득하려면 공감 이상의, 보다 명확한 답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공감한다는 표현만 갖고 들어가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좀 더 확실한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대의원대회 전까지 정부와 민주노총이 세 가지 원칙을 놓고 어느 정도 접점을 마련하느냐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AI가 노동을 흔드는 시대…새로운 룰 누가 만드나
이번 사회적 대화 시도가 과거와 다른 점은 노동시장을 둘러싼 환경이다. 1998년의 사회적 대화가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통 분담에서 출발했다면, 지금은 AI와 산업 전환이 일자리와 근로방식 자체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노동시간과 고용 형태, 직무 전환과 재교육 등 노사가 함께 풀어야 할 의제도 복잡해졌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AI 전환기를 맞아 노동과 관련해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며 "이 혼란한 시기에 노동조합 총연맹이 정부·사용자 대표와 함께 새롭게 중심을 잡아가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고, 그런 시도가 지금 굉장히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참여 여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면 AI와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정책 형성 단계부터 제시할 수 있다. 참여하지 않을 경우 정부와 사용자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가 당장의 합의 도출보다 숙의와 논의의 축적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사정이 문제의식과 현실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 대안을 만들어가는 구조다.
이미 개별 의제를 중심으로 대화의 경험도 쌓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실노동시간 단축과 퇴직연금 개편 등에서 양대 노총과 경영계가 참여하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 주도의 사회적 대화도 하나의 경험이 됐다. 경사노위 밖에 있던 민주노총이 참여했고, 합의 도출 자체보다 참여 주체들의 입장을 확인하고 논의를 이어가는 방식의 대화를 경험했다.
복귀보다 어려운 '지속'…대화의 축적이 관건
대의원대회 문턱을 넘는다고 사회적 대화가 곧바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내부에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반대 의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역대 지도부도 경사노위 참여를 추진했지만 내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원포인트 대화의 출발점이 노동 특례라는 점도 내부 논쟁을 키울 수 있다. 11월 말 예정된 위원장 선거 역시 변수다.
복귀 이후에도 갈등은 불가피하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들어와도 안정적으로 있으리란 법이 없다"며 "그런 일은 계속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관건은 한 번의 합의보다 대화의 축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대화는 축적이 중요하다"며 "합의 도출에 목매달지 않고 문제의 실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상호작용 자체가 가치이고, 국면이 변하면 다른 방식으로 합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에도 의미가 작지 않다. 민주노총의 복귀가 성사되면 한국노총과 경영계를 포함한 주요 노사정 주체가 제도권 사회적 대화에 함께 참여하는 틀이 마련된다. 내년은 외환위기 30년이 되는 해다. 외환위기 속에서 출범한 사회적 대화가 30년 가까이 이어진 참여와 이탈의 역사를 넘어 안정적인 대화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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