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김건희씨의 이른바 '매관매직'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일부 금품 수수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지만, 김상민 전 부장검사로부터 1억4천만원 상당의 이우환 화백 그림을 받았다는 혐의는 그대로 유죄가 유지됐다.
특히 이우환 그림을 둘러싼 법정의 쟁점은 재판이 진행되면서 달라졌다.
처음에는 '김 전 검사가 그림값을 냈는지', '그림이 실제 김씨에게 전달됐는지'가 관건이었다. 이후 김 전 검사의 항소심에서 구매와 전달 사실이 인정되자 '진짜 이우환 작품인지', '1억4천만원의 가치가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씨 역시 그림을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유리 조각'과 서명의 채도 등을 근거로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림 수수 사실을 인정한 데 이어 "이 사건 그림은 진품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가액 역시 1억4천만원 상당으로 인정했다.
김상민 1심 쟁점은 '누가 샀나·누구에게 갔나'
문제의 그림은 이우환 화백의 1980년작으로 알려진 '점으로부터(From Point) No.800298'이다. 특검은 김 전 검사가 2023년 이 그림을 1억4천만원에 구입한 뒤 공천 등을 부탁하기 위해 김씨에게 건넸다고 봤다.
하지만 김 전 검사 사건의 1심 재판부가 먼저 따진 것은 그림의 진위나 가액이 아니었다. 김 전 검사가 실제 그림값을 부담했는지, 그림이 김씨에게 전달됐는지였다.
1심은 두 사실 모두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김 전 검사의 마이너스통장 잔액과 김씨의 오빠 김진우씨의 현금 마련 여력 등을 토대로 김진우씨가 그림 구매 비용을 부담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김진우씨가 그림 구매 비용을 부담했을 가능성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림의 이동 경로도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진우씨에게 교부된 뒤 계속 보유됐을 가능성 △김진우씨를 거쳐 김씨에게 전달됐다가 다시 김진우씨가 보유했을 가능성 △다른 경로로 김씨에게 전달된 뒤 김진우씨가 보유했을 가능성을 모두 열어뒀다.
그림을 누가 샀고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부터 확정되지 않은 만큼, 이 그림이 실제 이우환 화백의 작품인지와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는 당시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2심 "김상민이 사서 김건희에게 줬다"…그다음은 '진품인가'
대만 이씨얼리얼 옥션이어스 홈페이지 캡처김 전 검사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그림의 구매자와 전달 경로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림 거래를 주선한 강모씨의 진술과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 그림 구매 과정 등을 종합해 김 전 검사가 그림값 1억4천만원을 부담했다고 판단했다. 김진우씨가 그림값을 대신 부담했을 가능성을 열어뒀던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그림의 최종 목적지도 김건희씨였다고 봤다. 강씨의 진술과 그림이 오간 과정 등을 종합하면 김 전 검사가 김씨에게 그림을 제공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렇게 '김 전 검사가 1억4천만원을 주고 산 그림을 김씨에게 건넸다'는 사실관계가 인정되면서 재판의 쟁점도 달라졌다. 실제 건너간 그림이 이우환 화백의 진품인지, 그렇다면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도 유무죄 판단에서 따져야 할 문제가 됐다.
하지만 그림의 진위를 두고 감정 결과는 엇갈렸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그림을 진품으로 판단했다. 반면 한국화랑협회는 위작이라는 의견을 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감정 불가' 의견을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림 실물을 법정으로 가져와 직접 살펴보고 서로 다른 결론을 내놓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었다. 그 결과 그림을 진품으로 판단하고, 김 전 검사가 실제 지급한 1억4천만원을 그림의 가액으로 인정했다.
김건희 재판으로 넘어온 '진품이냐 위작이냐'
별도로 진행된 김씨의 이른바 '매관매직' 혐의 재판에서도 그림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김씨 측은 김 전 검사로부터 그림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면서 위작 가능성과 가액도 다퉜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검사 사건에서 그림 제공 사실이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된 점과 그림 거래를 주선한 강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김씨의 그림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확정판결과 달리 판단할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김씨 측은 그림에서 발견됐다는 '유리 조각'과 서명의 채도, 캔버스 마감 방식 등을 근거로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밀한 성분 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문제의 입자가 실제 유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봤다. 캔버스 마감 방식은 제작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서명의 채도를 두고도 전문가들의 판단이 엇갈렸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그림 실물을 반복해 감정하고 다수 전문가가 앞뒷면과 피그먼트, 색상 등을 종합해 세 차례 일관되게 진품이라고 판단한 점에 무게를 뒀다.
재판부는 한국화랑협회의 감정 의견과 국과수의 감정 결과 등을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 그림은 진품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가액 역시 1억4천만원 상당으로 인정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수수 자체 부인한 '바쉐론·이우환'…엇갈린 결론
이우환 화백의 그림은 김씨의 '매관매직' 의혹에 등장한 여러 금품 가운데서도 수수 사실 자체가 쟁점이 된 물품이다.
김씨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받은 목걸이·브로치·귀걸이,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으로부터 받은 금거북이와 세한도 복제품, 최재영 목사로부터 받은 디올 가방 등은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탁이나 대가성을 부인했다.
반면 사업가 서성빈씨의 바쉐론 콘스탄틴 손목시계와 김 전 검사의 이우환 그림은 받았다는 사실 자체부터 다퉜다. 시계는 서씨에게 구매를 대행시킨 것이라고 했고, 그림은 김 전 검사로부터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에서 두 물품의 운명은 갈렸다. 재판부는 바쉐론 시계의 경우 김씨가 서씨에게 구매를 대행시켰다는 주장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심의 유죄를 무죄로 뒤집었다.
그러나 이우환 그림은 달랐다. '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어진 '위작' 주장도 배척됐다. 법원은 끝내 김 전 검사가 1억4천만원에 구입해 김씨에게 건넨 그림이 이우환 화백의 진품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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