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아프가니스탄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A(28)씨는 전쟁으로 가족 전체가 살해 위협에 놓이자 5년 전 한국으로 탈출했다. 이후 낯선 한국어로 보육교사 자격증을 공부해 취득한 A씨는 남양주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합격했다.
그러나 합격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린이집에서 일하지 못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본국의 범죄경력증명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집권 이후 행정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증명서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공부해 보육교사 합격…'본국 서류'에 자격증도 무용지물
2021년 탈레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A씨는 한국으로 탈출했다. 간호사로 일했던 A씨는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서 규정하는 공익 증진에 이바지한 특별기여자로 인정받았다. 이에 거주(F-2) 체류자격을 받아 한국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2023년 4월에는 보육교사교육원의 보육교사 자격증 과정에 등록했다. 1년 동안 낯선 한국어로 된 전문 용어를 익히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5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결국 2024년 2월 보육교사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다음 달에는 남양주의 한 어린이집에 이력서를 냈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는 좋아하는 아이들을 돌보며 일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관할 시청은 어린이집에서 일하려면 범죄경력증명서가 필요하다며 아프가니스탄의 범죄경력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안내했다. 한국에서는 관할 경찰서에서 성범죄나 아동학대 관련 범죄에 따른 취업제한 대상자가 아니라는 내용의 범죄경력증명서를 받았지만, 본국의 범죄경력증명서도 제출해야 했다.
남편과 함께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을 찾은 A씨는 범죄경력증명서를 요청했다. 그러나 탈레반 집권 이후 본국의 행정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직접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수차례 문의했지만 대사관은 묵묵부답이었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A씨는 아프가니스탄에 돌아갈 경우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호소한다. 사형에 처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증명서를 요청한 지 몇 주 뒤 아프가니스탄 법무부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왜 다른 나라에 갔냐"는 질책만 들어야 했다.
A씨는 법무부와 교육부 등에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본국 범죄경력증명서 제출 면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난 1월 "A씨는 출입국관리법과 시행령에 따라 어린이집 취업에 제한이 없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면제 요청을 받아줄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영유아의 안전한 성장을 위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경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아프간서 서류 받아올 날만 기다려…"대체 절차 마련해야"
A씨가 1년 동안 공부했던 보육교사 자격증 교재들. 김지은 기자"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니까…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싶어요". 지난 18일 만난 A씨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꼭 일하고 싶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20권이 넘는 보육교사 자격증 교재가 쌓여있었다. 프뢰벨의 보육사상, 직관의 원리, 인간화의 원리 등 어려운 단어가 빼곡한 교재에는 A씨가 중요한 부분에 그어놓은 형광펜 자국과 손글씨 메모가 가득했다.
A씨는 이 교재들을 볼 때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보육교사로 일할 수 없게 된 현실이 떠올라 슬프다고 했다. A씨는 결국 몇 달 전, 합격했던 어린이집 취업을 포기하고 난민들이 많이 사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서류를 받아올 수 있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생명에 위협을 받을 우려 때문에 본국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없다면, 대체 절차를 마련해 취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주민센터 친구 부대표 조영관 변호사는 "아동 관련 시설에 취업하려면 범죄경력증명서를 제출하는 것은 필요한 방식"이라면서도 "다만 내국인 기준이기 때문에 난민의 경우엔 난민의 상황을 고려한 적절한 대책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난민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A씨가 한국에 왔을 때는 22살로 성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부분의 기간을 미성년자로 지냈기 때문에, 성범죄나 아동학대 전력을 확인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 변호사는 "범죄경력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지만 본국이 전쟁 중이라서 증명서를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대체할 방법을 찾아서 취업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활동가는 "난민들이 본국에서 이런 행정 서류를 가져올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그래서 유엔 난민협약은 행정적 원조라는 규정을 뒀다"며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제 25조는 난민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통상 외국기관의 원조를 필요로 하지만 그 원조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체약국이 자국 기관 또는 국제기관을 통해 행정적 원조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며, 본국 기관이 통상 발급하는 문서 또는 증명서에 대해서도 대체적인 증명절차를 마련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국의 범죄경력증명서를 취득할 수 없는 경우 국내 범죄경력 조회, 국내 체류기간, 난민인정 과정에서 확보된 자료, 본인의 진술·서약 또는 그 밖의 합리적인 대체자료 등을 통해 결격사유를 확인할 수 있도록 별도의 대체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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