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기자고참들 빵 셔틀 하느라 뻔질나게 드나들던 '샘마트'는 그대로였다. 허름한 아파트, 낯익은 교회, 단골이었던 미용실도 기억 속 그 자리에 있었다. 군청은 자리를 옮겼고 전에 없던 카페들도 보였지만, 오래된 경찰서 청사를 마주하니 꿈속에 들어온 듯했다. 바뀐 건 나뿐인가. 누리호 5차 발사를 취재하러 17년 만에 돌아온 고흥이었다.
고흥에 처음 온 건 2008년 봄이었다. 육군에 입대했다 전투경찰로 차출됐고, 눈 깜짝할 사이 고흥경찰서에 배치됐다. 이곳에서 112타격대를 거쳐 경비작전계 행정대원이 됐다. 업무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경찰관들이었지만, 사무실 막내인 내게도 밑바닥 실무가 돌아왔다.
나로호 발사를 준비하던 그 시절, 대통령이 나로우주센터를 직접 찾았다. 주변에선 대통령이 고흥을 찾은 전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호 인력은 물론 군, 소방 등과 손발을 맞추는 일 하나하나에 긴장했던 이유다. 당일에는 경찰서 담장 안의 차량을 모두 빼고 서장 차고에 경호 차량을 들였다. 직원들도 눈코 뜰 새 없었으니 그런 일은 막내 차지였다. 발사 통제에 필요한 경비 계획과 경찰관 동원을 준비하는 일에도 내 손이 보태졌다.
그렇게 직원들을 따라 우주센터를 자주 오갔다. 읍내에서 한참을 달린 뒤에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더 들어가야 했다. 발사대와 2km 떨어진 통제동 2층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군, 소방 등 여러 기관 관계자들과 함께 발사를 준비했다. 발사체 하나를 날리는 데 땅 위의 사람이 이렇게 많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2009년 8월 25일, 나로호는 마침내 하늘로 솟았다. 성공인 줄 알고 기뻐했지만, 위성이 목표 궤도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소식에 속이 탔다.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도 작게나마 힘을 보탰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허탈감에 잠까지 설쳤다. 나로호가 위성을 궤도에 올린 건 두 번의 실패를 지난 2013년, 세 번째 도전에서였다.
그 시절 고흥에서 자주 마주치던 러시아 사람들도 기억에 선하다. 우주센터는 물론 읍내에서도 쉬이 눈에 띄었다. 나로호의 상단은 국내에서 개발했지만, 1단은 러시아에서 들여왔기 때문이다. 특히 보안에 예민했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날은 우주센터 안의 건물 하나를 천막으로 통째로 가려놓은 모습을 봤다.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이번 발사를 참관하며 그 천막을 다시 떠올렸다. 현장 해설을 맡은 항우연 정태규 부장이 과거 러시아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했다는 '썰'을 듣고서다. 과거 나로호 1단을 보려고 다가갔던 그는 러시아 요원에게 말 한마디 없이 손짓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 땅에서 쏘는 발사체인데도 그 속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없던 서글픈 시절이었다.
엄격한 보안도 엔지니어끼리 통하는 마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정 부장이 특정 밸브의 소재를 묻자 보안요원 앞에서 답을 못 하던 러시아 엔지니어는, 주변을 살핀 뒤 구성 성분을 적은 쪽지를 슬며시 건넸다고 한다. 물론 성분을 안다고 같은 부품을 바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돌아가라는 손짓과 슬며시 건넨 쪽지. 기술을 배우려던 연구자들이 마주한 풍경은 그렇게 복잡했다. 그 속에서 연구와 시험을 이어온 사람들이 이번에는 누리호를 쏘아 올린 것이다.
이번 발사 현장에서는 예전과 다른 여유도 느껴졌다. 발사 직전 우주청 핵심 관계자는 '긴장되느냐'는 질문에 "나부터가 긴장되지 않는다"며 미소를 보였다.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도 사정이 달라진 모양이다. 17년 만에 다시 만난 경찰관들은 "지금은 꼭 필요한 인원만 배치하니 좋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이라 인력을 대거 투입하던 그때와 달리 통제 지점이 줄었고, 도로와 숙박 여건이 나아지면서 근무를 준비하는 사정도 달라졌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발사 현장에서는 목표 고도에 가까워진 뒤에도 속도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않자 잠시 긴장감이 돌았다. 속도가 오르고 위성이 차례로 분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다시 박수가 터졌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7일 누리호 5차 발사와 관련해 발사통제센터(MDC) 내 연구진 등 관계자들이 정상 발사 이후 궤도 진입, 주탑재위성 분리 등 주요 발사 이정표를 달성하자 기뻐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누리호는 주탑재위성 다섯 기를 목표 궤도에 투입했다. 위성을 하나씩 내보낼 때마다 몸체 방향을 틀어 모두 180도를 돌았다. 발사체를 올려보내는 데서 나아가 여러 위성을 정해진 조건에 맞춰 내려놓는 일까지 해낸 것. 다만 함께 실은 큐브위성 한 기는 분리되지 않았다. 네 차례 연속 성공이라는 기록과 별개로, 원인을 밝혀야 할 숙제가 남았다.
발사 이후의 질문은 17년 전과 180도 달라졌다. 취재진은 민간기업이 운용을 어디까지 맡을 수 있는지, 제작 기간과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더 자주 쏠 수는 없는지를 물었다. 성과가 쌓이니 질문도 까다로워졌다. 미국과 중국의 발사 횟수와 가격까지 비교 대상에 올랐다. 아직 격차는 크지만, 내게는 그런 비교를 하게 됐다는 것부터 새삼스러웠다. 러시아의 협력에 기대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우리 발사체의 경쟁력을 따지고 있었다.
다음 목표는 달이다. 정부와 항우연은 차세대 발사체로 2031년 성능을 검증하고, 2032년 달 착륙에 도전할 계획이다. 재사용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아직 계획일 뿐이지만 어느덧 우리도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숱한 시험을 앞두고, 우주에 사로잡힌 외골수들은 다시 연구실과 발사장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김광일 기자고흥에 돌아와 처음엔 나만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 있는 동안에도 이곳 사람들은 다음 발사를 준비해왔다. 17년 전 위성 하나가 궤도에 오르기를 바라던 나는 이제 아들이 우리 발사체를 타고 우주로 가는 날을 상상한다. 다음 17년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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