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의 제작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 사건의 배후에 있는 것처럼 역사를 왜곡한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서울경찰청에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5·18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감옥에 간다. 노무현 대통령을 건드리면 줄줄이 고소·고발 당한다. 박정희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다"라며 비판했다. 황진환 기자시월의 첫날,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를 관람했다. 역사왜곡 논란이 막 불붙을 당시 관객이 100만 명을 조금 넘겼던 '암살자(들)' 얘기다.
우선 전제할 게 있다. 연출자인 허진호 감독은 최근작을 기준으로 호오(好惡)를 말할 때, 선뜻 '호(好)'라고 하긴 어려운 쪽이었다.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다룬 이번 작품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도 속도감 있는 스릴러는 잘 연상되지 않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로 기억되는 대표작 또한 느림의 미학에 가깝지 않았나. 동년배 박찬욱 감독이 "이번엔 '호흡이 빠른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내가 또 속냐' 생각했다"고 농담한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즉, '내돈내산' 극장행의 동기는 작품 자체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이를 둘러싼 외재적 논란이었다. 목적은 2가지였다.
①국민의힘을 격분케 한 '공범설'이 얼마나 개연성 있게 묘사됐는지 ②'정치적 입장'을 떠나, 씨네필로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인지를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것. 정치부 기자로선 1번에 가중치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1번이 헐겁다면, 2번도 성립이 어려워지는 명제들이었다.
뜯어본 결과, '암살자(들)'은 예상보다 연기와 촬영, 편집의 이음새가 매끄러운 영화였다. 군더더기는 걷어내고 130분 내내 단 하나의 사건, 거기서 비롯된 의혹을 좇는 데 집중한 점이 주효했을 것이다.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주재료임에도, 상영관 안에선 숨죽여 스크린을 응시하는 공기가 느껴졌다. 일단 대중예술로서 일정한 완결성과 흡인력은 갖춘 셈. 직업상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부른 계기가 작중 기자들의 '윗선 개입설' 취재였다고 각색된 부분이 이물감을 느끼게 했을 뿐이다.
그럼 상영중단 요구까지 번진 '(박정희) 배후설'은 어떨까.
국민의힘을 위시한 보수가 분노하는 지점이 어딘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사건 당시 수사당국은 북한과 연계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저격범 문세광의 배후라는 결론을 비교적 빠르게 내렸다. 반면,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국립극장 현장에서 검거된 뒤 사형된 문씨의 범행 뒤에 정권의 흑막이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풍긴다.
진영에서 가장 추앙받는 상징적 인물을 '공범'으로 몰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데 일부분 동의한다. 다만, '이같은 가설을 확정된 사실관계로 못 박고 고발하는 폭로성 영화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특정인을 배후로 지목해둔 '답정너' 서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
가령, 작품에서 파면된 형사(박철구)는 경축식 직전 급작스런 청와대 경호지침 변경으로 '무(無)비표 출입'이 가능해진 데 의문을 품는다. 재벌가 출신 사회부 신참기자(한영일)는 육 여사가 쓰러지고 또다시 울린 총성에 여학생이 숨지는 모습을 목격하며 혼란에 빠진다. 현장을 감식한 시경 계장(이현도)은 핵심증거인 탄환 유실에 당황한다. 애초 작정하고 음모론을 생산하거나 동조한 경우들이 아니란 의미다. 등장인물 중 반(反)정부 성향이 제일 짙은 신문사 사회부장(김재환)조차, 철구의 제보를 냉큼 '받아쓰기' 하지 않는다. 후배에게 취재된 편린들을 "낱낱이 보고하라"고 할 뿐이다. 중앙정보부의 검열에 막힌 기사를 쓰려 했던 건, 그보다 훨씬 뒤다.
'남산으로 끌려가는' 일을 염려했던 시대다. 언론은 철저히 통제됐고 정보는 중앙이 틀어쥐고 있었다. 당국의 수사 결론에 토를 다는 것은 체제에 대한 도발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암살자(들)'은 필부들이 이러한 베팅에 이른 배경을 점층적으로 묘사한다. 주인공들을 기자들로 설정한
'언론 영화'로 만든 의도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을 것이다.
이 구성을 가능케 한 정황들은 이번에 갑자기 창조된 게 아니다. 사건 관계자들이 먼저 던졌던 질문이며, 이미 20여 년 전 지상파 방송들의 탐사취재를 통해 제기된 의문점들이기도 하다. 관련 유튜브 영상들은 영화가 융단폭격을 당하자, 역으로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재조명되는 중이다. 창작자의 악질적 왜곡의도가 투영됐다며, 북한의 선전선동 영화에 빗댄 비난들이 지나치게 느껴진 대목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상위 가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허용돼야 한다. 그런데 "좌파 패륜영화" 낙인을 넘어 주연배우의 집 앞에서 인신공격성 시위를 하고 감상평을 남긴 다른 배우들과 가족들까지 조리돌림하는 것, 평론가의 비평을 정죄해 입을 닫게 하는 것, 무엇보다 정치권이 상영 중단을 압박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노라 겁박하는 게 그 '자유'와 동의어일까.
존 F. 케네디 암살을 다룬 올리버 스톤의 'JFK'(1991)와 당시 미국사회가 대응한 방식이 지금 '암살자(들)' 논란의 비교대상으로 거론되는 연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고인의 편지를 공개한 유족 측이 유감을 표명하고, 또 행여 소송을 걸겠다면 그래도 이해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앞서 집권여당의 '입틀막법'을 질타한 정당이 지도부를 필두로 전당(全黨)적인 저주와 보복의 언어를 쏟아내고 국정감사를 단두대로 벼르는 상황은 곤혹스럽고 아이러니하다.
"'5·18 폄훼'는 안 되고 '박정희 명예훼손'은 괜찮냐"는 반문은 진영논리에서 파생된 '내로남불' 공격에 머물 뿐이다.
당정의 '스타벅스 때리기'와 5·18특별법을 비판한 우파정당이라면,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과 일관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간판은 '열림교회'인데 막상 문은 닫혀 있는, 인터넷에서 한때 유명했던 그 사진이 자꾸 겹쳐 보인다. 영화를 보고 온 날,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낸 입장문 일부를 덧붙인다.
"영화는 수많은 창작자와 제작진이 오랜 시간 협업해 완성하는 문화적 창작물입니다. 실제 사건이나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극영화 역시 관련 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서, 극적 구성과 영화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작품의 표현과 해석에 대한 평가는 작품 자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암살자(들)> 제작진 역시 해당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여러 기록과 자료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최근 제기된 제작 및 투자와 관련한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협회는 이번 논의를 통해 특정한 역사적 해석이나 사회적 주장에 대해 판단하거나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작품을 둘러싼 논의가 작품에 대한 평가의 범위를 넘어, 제작사와 감독, 배우, 스태프 등 영화 제작에 참여한 개인에 대한 공격이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한국영화의 건강한 제작 환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