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가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이하 산안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산업재해 감축을 국정 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산재 예방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온 산안본부의 위상을 높여 정책 추진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단순한 조직 격상만으로 실질적인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효과가 담보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연구기능과 협업체계, 현장 적용성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 후속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0일 노동부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지난 7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산안본부를 차관급 본부로 격상하는 방안이 담겼다. 기존 지위는 실장급 조직이었다. 산안본부는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이 확대 개편되며 신설된 조직으로,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함께 그 역할이 크게 확대된 바 있다.
이번 차관급 격상에 따라 산하에는 두 개 이상 실이 배치돼 조직이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산업안전보건 정책 전반을 보다 체계적으로 총괄·조정하고, 산업재해 예방 및 대응 역량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정부는 오는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정책 추진 전반에 있어 산안본부의 역할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노동부는 "조직 확대와 종합대책은 별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이번 격상이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정책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5대 국정목표 중 하나인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제시하고, 그 핵심과제로 산재 감축을 포함시켰다. 정부는 한국의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이 OECD 평균보다 높은 0.39‱(퍼밀) 수준임을 감안해, 이를 2030년까지 0.29‱로 낮추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설정한 상태다.
노동부 내부에서는 이번 산안본부 격상이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노동부 관계자는 CBS 노컷뉴스와의 "산안 업무에 이미 상당한 로드가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며 "조직이나 인원이 확대되면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차관급 본부가 되면 기본적으로 두 개 이상의 실이 구성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직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인력 충원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산안청 대신 노동부 조직 격상…"실질적 정책 집행력 확보"
다만, 이번 결정은 노동계가 줄곧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 신설과는 다른 방향이어서 그 이유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노동계는 산안청 독립을 통해 산업안전 정책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외청으로 독립할 경우 장관의 입법권이나 지청을 보유한 노동부의 현장 적용성, 정책 조정력 측면에서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산안청 신설을 공약한 바 있으나, 이후 현실적인 여건과 정책 효율성을 고려해 기존 조직 강화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산안청 신설 시 향후 5년간 약 222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안청처럼 외청으로 독립할 경우, 오히려 입법권이나 정책 조정력 측면에서 약화될 수 있다는 내부 논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강태선 교수는 "산업안전 정책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 등 여러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이런 구조에서 외청보다는 차관급 본부로서 노동부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실질적 정책 집행력 확보에 더 현실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고위공무원들이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커리어 경로로 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차관급 본부가 생기면 안전보건을 주요 경력으로 삼는 고위직 인재 양성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순 조직 격상만으론 부족…연구·감독 기능, 독립성 강화 필요
연합뉴스노동계는 이번 산안본부 차관급 격상을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노동자 안전'의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조치"라면서도 "다만 격상이 곧바로 현장의 안전 강화로 이어지려면 예산·인력 확충과 노동자 참여권 보장 같은 실질적 제도가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또한 조직 격상이 산업재해 감축이라는 실질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격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강태선 교수는 "차관급 신설은 정책 추진력 확보 측면에서 필요한 조치"라면서도 "정책 효과성 확보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연구 기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존재하긴 하지만 안전보건공단 내 소규모 부서에 불과하며, 국가 정책을 설계하고 뒷받침할 만큼의 권위와 규모를 갖추고 있지 않다"며 "과거 폐지된 국립노동과학연구소를 부활시키는 등 국가 단위 연구기관 설립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지금의 산재 현실을 고려하면 감독 행정의 전문성과 기획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예산, 조직, 인력의 확충과 더불어 정책의 독립성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감독 정책이 현장에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 노동계의 정기적 의견 수렴이 제도화돼야 한다"며 "과거에도 일시적인 논의는 있었지만, 제도적 기반이 없어 흐지부지된 바 있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는 이런 상시적 소통 구조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