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푸틴은 왜 남북간 중재자를 자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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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푸틴, 북한과 혈맹 맺었지만 한국에 소통 신호
한반도 평화는 푸틴에 '기회', 北 후견 비용 감소
러, 우크라전 끝나면 극동·북극 개발 박차 예상
푸틴 "모든 나라에 문 열려"…한·일 참여 기대

지난 9월 3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모습. 조선중앙통신·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게시글 캡처지난 9월 3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모습. 조선중앙통신·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게시글 캡처
지난 9월 3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모습. 조선중앙통신·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중국의 9월 3일 전승절 행사가 화려하게 끝났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각본대로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서서 반미 연대를 과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조연 역할을 했다. 각자 따로따로 밀담의 시간도 가졌다.
 
빈틈없이 짜인 이번 행사에서 눈에 확 띈 장면은 우원식 국회의장과 푸틴 대통령의 조우와 악수였다.
 
푸틴 대통령이 우 의장의 손을 잡고 건넨 말은 더 의미심장하다.
 
곧 북한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인데 "김정은 위원장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면 좋을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우 의장의 이런 설명에 대해 크렘린궁은 "악수하고 인사를 나눴을 뿐 별도의 만남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푸틴의 남북한 관련 언급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을 감안해 확인해줄 수는 없지만, 내용은 틀리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9월 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기념 리셉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대화하는 모습. 국회의장실 제공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9월 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기념 리셉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대화하는 모습. 국회의장실 제공
푸틴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으로서 6자회담 참가국이다.
 
그래도 지난해 6월 북한과 동맹 관계를 체결한 푸틴이 남북 간에 '의견 전달자' 역할을 자처한 것은 좀 의외다.
 
러시아는 현재 북한군을 파병 받아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1년여 사이 북·러는 혈맹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한국 국회의장의 손을 잡은 모습은 김정은에게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남북 사이에 중재자를 자처하는 듯한 푸틴의 언행은 김정은의 의심을 살 수도 있다. 한국은 김정은의 적대국가다.
 
그래서 푸틴의 언급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단순한 관심 표명 이상으로 보인다.
 
비공식적 기회를 활용해 진심을 흘린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올해 들어 한·러 관계의 환경은 급격히 달라졌다.
 
국내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감옥에 갔다.
 
그는 재임중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연대'를 외쳤다.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중국, 러시아에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당장 평화가 도래할 분위기는 아직 아니지만,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러시아군이 점차 우세를 굳히고 있다.
 
만약 이대로 전쟁이 끝난다면 푸틴은 북한에 의존할 이유가 줄어든다. 대신 갚아야 할 빚만 남게 된다.
 
이번에 베이징에서 푸틴을 만난 김정은은 '형제애'를 운운하며 무조건 지원을 거듭 약속했다.
 
이제 이런 의욕은 푸틴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이 들이밀 청구서에 항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푸틴은 이번 북·러 베이징 회담의 모두 발언에서 북한군의 파병이 '김정은의 발의로 이뤄졌다'고 깜짝 공개했다.
 
한편으로는 감사의 표현으로 들리지만, 동시에 '러시아가 요청한 게 아니다'라는 발뺌의 의미로도 읽힌다.

지난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김정은과 푸틴의 4번째 정상회담이다. 조선중앙통신·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게시글 캡처지난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김정은과 푸틴의 4번째 정상회담이다. 조선중앙통신·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게시글 캡처 
강대국이 피후견국과 안전 보장을 약속하는 동맹을 체결할 때 '연루'의 함정을 우려한다는 이론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후견국인 러시아는 피후견국인 북한이 야기하는 국지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된다.
 
과거 한국의 군사정권이 단독으로 북한을 공격 또는 보복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치다.
만의 하나 김정은이 러시아를 등에 업고 한국이나 일본을 상대로 도발을 시도한다면 푸틴은 난감해질 수 있다.
 
동맹조약을 근거로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러시아는 한·일은 물론 미국과도 충돌할 각오를 해야 한다.
 
중국도 한반도에 러시아군이 개입하는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중·러는 협력적이면서도 경쟁적인 관계다.
 
결국 푸틴에게는 한반도의 평화가 훨씬 더 낫다. 북한의 후견국으로서 지불해야 할 비용이 가장 낮기 때문이다.
 지난 9월 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 10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실 게재 영상 캡처지난 9월 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 10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실 게재 영상 캡처
푸틴이 중국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마친 뒤 곧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간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틴은 이곳에서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극동지역 개발이 러시아의 국가적 목표임을 재확인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매년 9월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 각국 지도자를 초청해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
 
푸틴이 매번 참석하는 이 행사에, 시진핑 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리고 박근혜·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 적이 있다.
 
특히 아베 전 총리는 2016년부터 4년 연속 이 포럼에 참석해 푸틴과 매년 만났다.
 
러시아의 극동 및 북극 개발 구상에서 일본 부흥과 지역 평화의 기회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10회째를 맞은 올해 동방경제포럼의 주제는 '극동: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가 원수급이 단 1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라오스와 몽골조차 대통령이 아닌 총리를 대신 보냈다.

한국과 일본도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포럼 연설에서 푸틴은 "극동과 북극지역의 개발 사업은 모든 나라에 문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 사업에 러시아의 천연가스 추출 및 액화 기술을 지원할 뜻도 밝혔다.
 
동력을 잃은 동방경제 포럼과 극동 및 북극 개발에 어떻게든 다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푸틴은 특히 이번 포럼 대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협력을 기다리는 눈치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듯 "러시아와 사업을 재개하고 싶어하는 이해 당사자는 많다"고 언급했다.
 지난 2016년 9월 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 ·러 정상회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정부가 주관하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했다. 대통령기록관 박근혜 전 대통령 해외순방 영상 캡처지난 2016년 9월 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 ·러 정상회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정부가 주관하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했다. 대통령기록관 박근혜 전 대통령 해외순방 영상 캡처
사실 한국의 경우 지난 2016년 제 2회 동방경제포럼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주빈으로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극동지역이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자 러시아의 새로운 심장"이라며 기대를 표시했다.
 
2017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문 전 대통령은 "한국이 극동 개발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도발을 억지하고 개방을 유도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핵개발에 공식 반대했다. UN안보리의 대북 제재에도 동참했다.
 
하지만 러·우 전쟁 이후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사실상 중단됐다.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고 극동 및 북극에서 경제 회복을 모색한다면 한·러 협력은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푸틴에게는 북한과 맺은 동맹관계가 걸림돌이 된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악수를 하면서 푸틴이 건넨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질문은, 이런 고심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 전 YTN베이징 특파원, 해설위원실장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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