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개의 이름이 머무는 곳, 무안공항의 시간은 아직 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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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참사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광주CBS 노컷뉴스는 참사 1년을 맞아, 운항이 멈춘 채 텅 비어 있는 무안공항의 현재를 기록하고 정부·항공사·조사기관의 발표와 유가족들의 문제 제기 사이에 놓인 간극을 다시 들여다봤다. 지난 1년 동안 이어진 유가족들의 치료와 보상 절차,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일상,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심리적·사회적 부담도 함께 추적했다. 비행기 운항 중단이 지역 관광·여행업계에 남긴 충격과, 무안공항 올스톱이 지역경제 전반에 미친 후폭풍 역시 짚었다.

광주CBS는 이번 4부작 기획을 통해 참사가 남긴 질문과 멈춘 활주로 주변에서 여전히 멈추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 온 사람들의 지난 1년을 기록한다. 17일 첫 번째 순서로 참사 1주기가 되도록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12·29 여객기 참사 1주기 기획①] 멈춰 선 공항의 시간, 남은 질문들
참사 1주기가 되도록 공항을 떠나지 못하는 유가족들
텅 빈 공항에 남은 것은 그리움과 국화 몇 송이
유가족들 "다 끝난 것 아니냐 물을 때 가슴 아파"

무안국제공항 외부에 파란 리본을 달고 있는 박인욱 씨. 한아름 기자무안국제공항 외부에 파란 리본을 달고 있는 박인욱 씨. 한아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179개의 이름이 머무는 곳, 무안공항의 시간은 아직 그날에
(계속)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17일. 유가족들은 1년 가까이 무안국제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공항에서 밀려나게 되면 난 이제 가족들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그게 참 힘들어요"
 
공항에서 새우잠으로 밤을 보낸 유가족 박인욱(70)씨는 이른 아침 파란 리본 한 움큼을 챙겨 공항 밖으로 나섰다. 사고로 아내와 딸 부부, 손자·손녀를 전부 떠나보낸 박씨는 아내가 생각날 때마다 공항 곳곳에 파란 리본을 묶는다고 했다. 공항 2층 입구 난간에는 이미 어림잡아 수백 개의 파란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파란 리본은 참사를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해 진상을 밝히겠다는 유가족들의 약속이자 기다림의 표시다.
 
박씨는 "아침에 출근할 때면 아내가 늘 문 앞에 나와 '잘 다녀오라'고 했다"며 "문을 나선 뒤에도 베란다로 나와 위에서 손을 흔들어주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밤 박씨와 함께 공항을 지킨 처제 조미영(52)씨는 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씨는 "몸 구석구석이 불편하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졌는데, 그나마 공항에서는 떠나보낸 가족들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며 웃었다.
 
웃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웃음소리는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조씨는 "진짜로, 너무 억울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텅 빈 공항에 남은 건 그리움과 국화 몇 송이뿐

무안국제공항 1층 분향소 앞에 놓인 국화. 한아름 기자무안국제공항 1층 분향소 앞에 놓인 국화. 한아름 기자
무안국제공항은 여전히 2024년 12월 29일에 멈춰있다. 출국 대기 줄로 붐벼야 할 탑승동에는 사람 대신 바람만 스쳐 지나간다.
 
그 대신 공항 1층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은 사고로 숨진 제주항공 승무원의 동료 10여 명이 헌화를 위해 공항을 찾았다.
 
헌화와 묵념이 이어지는 동안 슬픔을 참지 못한 이들의 흐느낌이 분향소를 채웠다.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을 번갈아 바라보던 동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1층 분향소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난간에도 그리움은 남아 있다. 떠나간 이들을 향한 편지가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어린아이의 글씨로 또박또박 적힌 한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끝났다는 말이 가장 아프다

무안국제공항 2층 유가족들이 머무는 장소. 10여 명 가량의 유가족들은 밤이면 각자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함께 음식을 해먹으며 공항을 지키고 있다. 한아름 기자무안국제공항 2층 유가족들이 머무는 장소. 10여 명 가량의 유가족들은 밤이면 각자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함께 음식을 해먹으며 공항을 지키고 있다. 한아름 기자
유가족들은 주변에서 이번 여객기 참사를 '잘 수습된 사고'라고 말할 때마다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른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의 과실 가능성이 거론되는 참사를 국토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주관해 수습한 점, 사고 발생 1년이 다 돼 가도록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관련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은 유가족들을 다시 공항으로 나오게 했다.
 
박씨는 "아파트 이웃들에게 '공항에 간다'고 하면 '아직도 안 끝났냐?'고 묻는다"며 "그 말을 들으면 안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은 김영헌(53)씨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문구로 트럭 외부 전체를 꾸며 거리로 나섰다. 이날 오전 전남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마치고 공항에 도착한 김 씨를 향해 유가족들은 "쉬엄쉬엄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이야기가 자꾸 묻히는 것 같아서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전남경찰청 앞에 나갈 겁니다."
 
17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여객기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부모를 잃은 10대와 20대, 친구와 형제를 잃은 30~50대, 자식을 잃은 60대까지. 이들은 오늘도 무안국제공항을 맴돌며 떠나간 가족을 부르고 있다.

한편 지난 2024년 12월 29일 방콕을 출발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탑승객 181명 가운데 179명이 숨졌다.

김영헌 씨가 지난 11일 전남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은 사고로 떠나보낸 아내와 두 아들의 사진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김영헌 씨 제공김영헌 씨가 지난 11일 전남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은 사고로 떠나보낸 아내와 두 아들의 사진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김영헌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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