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핸드볼 경기장 앞에 사람들이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인 기자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서울 송파구 잠실 개표소 앞에서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집회가 다시 점차 과열되는 양상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경기장을 찾은 핸드볼 선수들의 가방까지 검사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또다시 주장했고, 참가자들끼리는 서로를 '끄나풀'이라고 몰아세우는 등 내부 균열 조짐도 나타났다.
8일 오전 8시30분 개표소가 마련됐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는 수백 명이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재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이들은 이미 개표가 끝난 송파구 관내 투표함이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주장하며 국민들의 확인 없이 외부로 반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기장 안팎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주시하는 등 현장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됐다.
집회 참가자들이 핸드볼 선수들의 카트에 실려 나온 공과 장비 등을 확인하고 있다. 박인 기자 오전 10시쯤 핸드볼 선수들이 공과 장비 등을 찾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러자 일부 참가자들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장비를 찾으러 오느냐", "밖으로 나올 때는 모두 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출입구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선수들은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등을 돌린 채 경찰의 인솔을 기다렸고, 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선수들이 장비를 챙겨 경기장 밖으로 나오자 참가자 일부는 가방 등을 열어 보일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선거 관련 물품을 들고 나오는 것 아니냐", "확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방 내부를 확인 받은 선수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현장을 떠났다.
8일 집회 참가자들이 한 20대 남성을 둘러싸며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박인 기자 참가자들 간 갈등도 빚어졌다. 한 20대 남성이 "선수들이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주자"며 "이미 한 차례 확인했으니 된 것 아니냐"고 말하자 일부 참가자들이 반발하며 "너 프락치(끄나풀)냐"고 몰아세웠다. 남성이 아니라며 해명했지만 10여명이 둘러싸고 추궁을 이어갔고, 다른 참가자가 중재에 나서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남성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결국 눈물을 보인 뒤 자리를 떠났다.
이 같은 내부 갈등 조짐은 전날부터 이어졌다. 전날 오후까지는 부정선거 주장이나 정파적 발언보다 재선거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분위기였지만, 늦은 밤부터는 "왜 부정선거 주장을 하면 안 되느냐", "성조기를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진연의 요구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전 집회 구호도 다시 "부정선거, 재선거"로 바뀌었다.
이날 현장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일부 참석자는 "이런 성격의 집회인 줄 몰랐다"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인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너무 감정적이어서 그냥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 A씨는 "순수하게 참여한 젊은 사람들과 예전부터 구치소 앞에서 활동해온 사람들이 섞여 있다"며 "서로를 감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8일 오전 집회 현장 바닥에 놓인 팻말들의 모습. 박인 기자 실제로 현장 곳곳에는 "왜 성조기 X, 다른 구호 X, 스피커 X, 여기는 자유 민주주의", "성조기 환영", "대진연 친중친북 출몰주의", "대진연 부정선거 성조기에 발작중" 등이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선거 주장 대신 재선거 요구에 초점을 맞추자는 의견을 내놓을 경우 곧바로 '스파이'로 의심받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진상 규명을 지시한 가운데 경찰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선거 종사자들의 단체대화방을 확보하고 선거사무에 동원된 공무원과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지 못한 시민들을 조사하는 한편, 인쇄업체를 상대로도 관련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