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과 이란이 사실상 종전에 합의했다. 지난 2월28일 개전한 지 106일 만이다. 19일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식이 있을 예정이다.
15일 새벽 찾아온 낭보에 국내 증시는 곧바로 불붙었다. 코스피는 순식간에 8500대를 회복했다. 올해 14번째 매수 사이드카도 발동됐다. '종전' 훈풍을 타고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호르무즈 해협이 전면 개방돼 석유 길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국제유가도 일제히 내림세로 돌아섰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는 80달러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유럽 천연가스는 더 떨어졌다. 물가 진정이 예상되며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도 낮아졌다. 미국 국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증시에 희소식이다.
덕분에 이달 1560원선을 돌파했던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04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코스피에서 외국인 순매수가 2거래일째 이어졌고, 달러 수급 부담을 키웠던 스페이스X 상장도 마무리됐다. 1500원 대를 사수하던 정부도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다고 꽃길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급한 불을 끈 정도이지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환율은 안심할 수 없다. 정부와 한국은행,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1500원대는 뉴노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외국인도 언제 다시 주식을 팔아치울지 모른다. 종전 서명 후 환율이 1500원선 아래에 계속 머무를 것으로 보는 견해는 그리 많지 않다. 수출은 역대급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의 호소에도 수출기업들은 대외 불확실성에 따라 좀처럼 달러를 풀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기준 국내 5대 은행의 기업 달러예금 잔액은 543억 달러로 3년5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서학개미들도 국내 증시 변동성 때문에 다시 미국 증시로 슬슬 눈을 돌리는 분위기이다.
코스피가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합의에 상승 마감한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물가도 여전히 빨간불이다. 종전 이후 국제유가 하락이 곧바로 국내에 반영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동의 원유 생산시설과 공급망이 복구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상화 시점을 짧게는 수개월 뒤, 길게는 내년까지로 보고 있다.
결국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 여파가 걱정이다. 내수 부진에 힘들어하는 자영업자, 중소·영세기업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일자리도 줄어들게 되는데, 이미 지난달 1년 이상 상용근로자 수가 26년5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대다수가 제조업의 청년들이었다.
주거 문제 역시 갈수록 불안이 커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전·월세는 물론 매매 가격까지 트리플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주식으로 번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돼 집값을 자극하고도 있다. 올해 1~4월 주택 매입에 사용된 주식·채권 매각대금은 3조7천억원이 넘는다. 이 중 3분의2는 강남3구 등 서울에 집중됐다.
전쟁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19일 서명식도 MOU(양해각서)에 불과하다. 또 어떻게 뒤집힐지 아무도 모른다. 설사 완전한 종전이 되더라도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다.
다행히 반도체 초호황으로 올해 국세 수입이 예상보다 16조원이나 많을 것이라고 한다. 정부 말대로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우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사용되어야 한다. 정치적 고려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차대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