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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들었다 놨다'…'한국판 헬렌 토마스 기자'는 절대 못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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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며 10명의 미국 대통령을 취재했던 전설적 여기자 헬렌 토마스가 현지 시간으로 20일 93세를 한 달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많은 대통령이 백악관 주인으로 왔다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 반세기 동안 대통령을 포함한 높고 막강한 권력자들을 쩔쩔매게 하는 질문을 퍼부었다.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에 앉아 공격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요즘말로 '돌직구'를 던지던 그의 모습은 전세계인들에게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곤 했고, 현직 언론인에게는 살아 있는 교과서 역할을 했다.

역대 대통령과 얽힌 일화도 많다. 조지 부시(아들)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가 밝힌 이라크 전쟁의 원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당신이 전쟁을 일으킨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그의 질문에 "오랜 기자생활을 한 당신의 질문을 존중한다. 하지만…나는…전쟁을 원치 않았다"고 동문서답을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의 허구성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보복일까? 부시는 토마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그를 왕따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노(老) 베테랑 여기자의 타계 소식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토머스는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많은 미국 대통령들을 긴장하도록 만들었다"고 애도 성명을 냈다.

국내 언론에서도 50년 동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토머스 기자의 타계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헬렌 토마스 기자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언론의 현실, 특히 청와대를 둘러싼 언론 실상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에게 일문일답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는 토마스 기자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일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모든 나라의 언론환경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언론이 권력의 핵심에 얼마나 깊숙히 접근해, 그 권력을 상대로 얼마나 자유로이 취재하고, 그 결과를 얼마나 제대로 보도할 수 있는지는 언론자유의 보편적인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청와대가 우리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언론이 청와대를 대하는 저자세도 부끄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인 '정부 3.0'을 선포하면서 정보개방을 독려했지만 정작 청와대는 아직도 기자들의 접근이 차단된 철옹성이다.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윤창중 전 대변인에 의해 만들어진 '밀봉'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정현 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이동, 기자들과 접촉을 강화하면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홍보 수석 이외에 다른 수석은 여전히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고사하고 허태열 비서실장이나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도 언론의 취재 영역 밖 저만치에 있다.

청와대 관계자와의 만남이나 전화통화는 아직도 암암리에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이뤄진 접촉도 극도로 몸을 사리는 상대방에 의해 별소득없이 끝나기 일쑤다.

대통령에 대한 취재는 예나 지금이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기자들이 풀(pool)단을 구성해 대통령의 발언을 적어오면 그것을 공유해서 취재하는 시스템이다.

대통령의 신변 안전이 중요하고 출입기자들이 많다보니 풀제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 뿐이다.

미국처럼 대통령이 기자들과 수시로 일문일답을 주고 받으며 국정의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이다. 박근혜정부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정부 모두 그랬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출입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며 국정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 다만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자 '노기'에 차서 언론을 빌려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다시피 한 게 한 차례 있을 뿐이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언론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기자실의 위치다. 미국 백악관 기자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건물에 있다.

청와대.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은 청와대 경내의 한 쪽 끝에 있고, 풀 취재를 빼면 춘추관을 넘어서 '진정한' 청와대에 출입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청와대 출입이 최대 5년을 넘기지 못하는 언론사 출입시스템도 문제다. 요즘들어 전문분야를 파고들어 수년 또는 십 수년간 출입하는 경우가 종종있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지방지를 빼면 정권과 함께 시작해서 정권과 함께 끝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나마 5년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

최고 권력에의 접근이 쉽지 않고, 출입기자들이 단명하는 상황에서는 역대 정권들을 통시적으로 꿰뚫는 속에서 나오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송곳 질문을 던져 대통령을 쩔쩔매게 만드는 '한국판 헬렌 토마스 기자'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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