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국민의힘이 '부정선거론'을 놓고 둘로 쪼개졌다. 쟁점은 투표율 조작이 득표율 조작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한쪽에서는 "투표율 집계가 조작됐으니 득표율(개표) 조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7일 "투표자 수를 임의로 조작했다는 것은 득표자 수도 조작했다는 뜻"이라며 "이번 선거는 총체적 오염이자 부정선거로, 부정선거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고 공세를 취했다.
반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장인 윤상현 의원은 '투표율 오입력'과 '득표율 조작' 사이의 선을 철저히 긋고 있다. 윤 의원은 "시간대별 투표자 수 오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후보별 득표수가 조작됐고 선거 결과가 바뀌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당내 부정선거론 확산을 차단하고 나섰다.
투표율 집계, 득표율과 별개지만…"선관위 신뢰 흔들"
실제로 선거 현장에서 투표율 집계와 득표율 집계(개표)는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절차다.
우선 논란이 된 투표율 집계는 언론 발표와 국민 모니터링을 위해 매시간 집계하는 '잠정 통계'다. 실시간 전산 자동 집계가 아니라 현장 인력의 수기 확인과 전화·문자 보고에 의존한다.
집계는 매시 정각 15~30분 전 전국 1만 4천여 개 투표소에서 시작된다. 투표관리관과 사무원들이 당시까지 교부된 잔여 투표용지를 확인해 대략적인 투표자 수를 파악한다. 예컨대 '오전 10시 투표율'로 공개되는 데이터는 실제 오전 9시 30분~50분 사이 현장에서 수기로 파악된 수치다.
이렇게 파악된 투표자 수는 전화·문자로 전국 3500여 개 읍·면·동 선관위에 전달된다. 읍·면·동 간사와 서기들이 이를 선거관리시스템에 수기 기입하고, 최종적으로 256개 시·군·구 선관위가 확인·승인해 투·개표보고시스템에 입력하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반영된다.
이 과정은 수만 명의 현장 인력이 수기로 보고를 주고받다 보니 누락이나 시차 입력, 단순 행정 오기입(휴먼 에러)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최근 드러난 선관위의 '투표율 조작' 파문도 여기서 터졌다. 선관위가 오입력을 정식 절차대로 정정하지 않고, 타 투표소에 분산 입력하거나 다음 시각 수치에 임의 반영하는 등 통계를 허술하게 운영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아무리 투표율 집계가 잠정치라고 하더라도 통계를 조작한 점은 명백한 문제다. 투표 당일 후보자 측은 물론 유권자도 이 수치를 참고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투표 당일에 정당도 시간대별로 투표율을 체크하며 전략을 짜는데, 알고 보니 자기들 마음대로 수치를 기입했던 것이라면 선관위의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표율 조작→득표율 조작' 이어지진 않아…"구조적으로 불가"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모습. 연합뉴스하지만 투표율 집계의 행정적 부실이 득표율(개표 결과) 조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두 시스템은 서로 전산적·물리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독립된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후보자의 당락을 가르는 득표율은 전산망 수치가 아닌, 봉인돼 개표소로 이송된 '실물 종이 투표지'를 바탕으로 집계된다.
개표는 투표 마감 후 참관인 동석하에 투표함이 개표소로 옮겨지며 시작된다. 현장에는 지자체 공무원과 교직원, 금융기관 직원뿐만 아니라 일반 공모로 위촉된 일반 시민 개표사무원들이 대거 투입된다.
실체적 검증은 수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개함된 투표지를 투표지분류기에 넣어 1차 분류한 뒤, 기표가 모호한 미분류표를 솎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기계 분류가 끝나면 개표사무원들이 투표지 묶음을 인계받아 전량 손으로 한 장씩 넘겨가며 분류 오류나 타 후보 표 혼입 여부를 확인하는 1차 육안 수검표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법관, 변호사, 정당 추천 인사 등으로 구성된 선관위 위원들이 개표상황표 수치와 실물 투표지 묶음을 다시 손으로 직접 넘기며 2차 재수검표를 수행하고, 미분류표의 유·무효를 최종 판정한다.
이 모든 다중 수작업 과정은 테이블마다 1~2m 근접 거리를 오가는 여야 정당 추천 참관인과 일반 시민 참관인들의 밀착 감시 및 촬영 속에서 이뤄진다. 출석 위원 전원의 수작업 대조와 서명이 완료돼야 비로소 위원장이 해당 구·시·군의 최종 득표수를 공표한다.
결국 수기 보고에 의존하는 '투표율' 전산에 오기입이나 조작이 발생하더라도, 정당 참관인들의 눈앞에서 종이표를 직접 수작업으로 세어 만드는 '득표율' 결과가 왜곡될 수는 없다.
득표율 조작을 주장하려면 투표율 입력망이 아닌 개표 현장 자체의 조작 정황을 입증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현재까지 단 한 건도 나온 바 없다.
22대 총선 개표 작업을 했던 공무원 최모씨는 "선거 당일까지도 내가 무슨 업무를 맡을지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1·2·3차 검표까지 함께하는 절차"라며 "현장에서는 사소한 일로도 각 정당 참관인이 눈에 불을 켜고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에 개표 단계에서 표를 조작하는 일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부정선거론' 당내 주도권 다툼…"안이한 길로 흐를까" 우려
연합뉴스'투표율 오입력' 사태가 당내 주도권 다툼과 맞물리며 내부의 신경전은 격화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와 주진우 의원이 '득표자 수 조작 가능성'에 화력을 집중하는 가운데, 나경원 의원 역시 "부실이 쌓이면 그것이 곧 부정"이라며 "조작 가능성이 없다고 선부터 긋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윤상현 의원의 '조기 선 긋기'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윤 의원은 "부정과 부실은 다르다"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윤 의원은 13일 "부실이 쌓이면 부정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라며 나경원 의원에게 '부정선거 끝장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나 의원이 "번지수가 틀렸다. 토론 대상은 당 내부가 아니라 선관위여야 한다"며 즉각 거부하는 등 중진 간의 설전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윤 의원처럼 공개적으로 부정선거에 대한 공세를 펴지는 않지만, 당내에서는 부정선거론과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부정선거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선거를 너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며 "살인자도 증거가 나와야 살인자라고 부를 수 있는 건데, 일단 살인자로 규정해 놓고 '수사해서 증거를 찾아보자'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어 "당내에서도 더 이상 올림픽공원 집회에 나가지 않는 의원들은 부정선거 프레임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당내에서는 이 같은 '부정선거 스탠스'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권파가 올림픽공원 등 개표소 현장에 모인 강성 지지층의 동력을 유지하고 결집을 도모하기 위해 부정선거 프레임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이 '부정선거의 늪'에 빠질수록 당 개혁과 체질 개선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우리가 앞으로 선거에서 이기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만 막으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길로 흐르게 될까 봐 우려된다"며 "당이 스스로 개혁할 생각은 안 하고 강성 지지층에만 호응하는 달콤한 부정선거론에 빠져드는 건, 당을 스스로 망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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