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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소멸되지 않는 '네버엔딩' 대화록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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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갈등 먹고 고비마다 부활 거듭…소모적 정쟁 언제까지

지난해 대선정국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 의해 ‘NLL 대화록’ 정쟁이 촉발된 지 오는 8일로 딱 1년이 된다.

대선정국을 휘몰아쳤던 여야간 대화록 공방은 대선 이후 국정원 댓글사건과 맞물려 한층 격화되면서 국정원의 전문공개와 대화록 열람, 사초폐기 논란으로 이어지며 고비 때마다 정국의 블랙홀로 맹위를 떨쳤다.

이후 소멸되는 듯했던 대화록 문제는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 속에서 지난 2일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로 다시 부활하며 정기국회를 뒤덮고 있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이 쌓여있는 가운데 끝나지 않는 대화록 정쟁은 고단한 민심에 암울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1. 발단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윤성호기자

 

대화록 공방은 18대 대통령선거를 두 달여 앞둔 지난해 10월 8일 정문헌 의원은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제기했다. 정 의원은 당시 류우익 통일부 장관에게 “2007년 10월 남북정상의 10.4 공동선언의 합의문건 외에 별도 다른 경위와 내용 혹은 구두약속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는 류 장관의 대답에 이어 나온 정 의원의 발언을 충격적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 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정 의원은 또 “노 대통령은 ‘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북한이 핵 보유를 하려는 것은 정당한 조치라는 논리로 북한 대변인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북한이 나 좀 도와달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대선정국에 폭탄이 떨어졌다.

2. 전개

대선정국은 들끓었다. 새누리당은 영토주권을 포기한 굴욕외교라며 대화록 논란을 ‘대북게이트’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공격했고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과 노무현정부 관계자들은 ‘완전한 날조이며 대선용 허위사실 유포’라며 새누리당과 정문헌 의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반발했다.

이 시점은 야권 단일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를 처음으로 앞지른 여론조사가 나온 직후라는 점에서 여야의 사활을 건 공방이 이어졌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는 같은달 12일 "사실이라면 제가 책임지겠다"면서 “사실이 아니라면 정 의원과 박근혜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며 박근혜 책임론을 거론했고 박근혜 후보는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명백히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고 응수했다. 정문헌 의원도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가세했다.

대화록 공방은 박근혜․문재인 여야 대선후보를 정조준하며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민주당은 ‘제2의 북풍이자 국기문란’이라며 정문헌 의원 등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과 함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추진 의혹 카드로 역공에 나섰고 새누리당은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던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 터졌고 대선을 이틀 앞둔 12월 16일 밤 11쯤 경찰은 “댓글 흔적을 발견 못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3. 위기

올해 2월 21일 검찰이 국정원이 제출한 대화록 발췌본을 근거로 정문헌 의원 등을 무혐의 처분하고 나흘 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화록 논란은 소멸되는 듯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대화록에 다시 생명을 부여한 것은 검찰의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결과 발표였다. 올해 6월 14일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댓글작업을 지시한 혐의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대선 직전 중간 수사와 결과 발표에 축소․은폐를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국정원과 경찰의 대선개입 혐의가 드러나면서 민주당은 6월 국회에서 국정원 개혁과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강력하게 촉구하며 새누리당에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던 중 민주당 소속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이 6월 17일 법사위에서 "지난해 NLL 포기 발언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짜놓은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새누리당은 즉각 NLL 국정조사부터 하자며 대화록 공개를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사흘 뒤인 6월 20일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 등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대화록 발췌본을 단독으로 열람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며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이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바로 다음날 先 국정원 국정조사를 전제로 "국회법에 따라 국회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공개할 수 있다“고 승부수를 띄웠다.

더 나아가 문재인 의원은 긴급 성명을 통해 “결코 해서는 안 될 어리석은 짓이지만 이제 상황이 어쩔 수 없게 됐다”며 대화록 공개를 제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24일 국정원이 명예회복을 이유로 대화록 전문을 전격 공개했다. 새누리당은 예상치 못한 국정원의 돌발 행동에 여론이 악화되자 국정원 국정조사를 수용하게 된다.

4. 절정

대화록 전문을 본 여야는 NLL 포기 여부를 놓고 극명하게 엇갈렸지만 국민 여론은 포기 발언이 아니다라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분위기였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2배 이상 많았다.

여기에 민주당의 대선당시 권영세 주중대사 녹취록 폭로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대화록 사전 입수 보도로 대선 전 불법유출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러자 문재인 의원은 6월 30일 국론분열 종식을 위한 대화록 원본 공개를 재차 제안하며 “만약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NLL 관련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면, 제가 정치를 그만 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대화록 원본 공개에 대한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야 협의는 급물살을 탔고 결국 7월 2일 본회의에서 가결 기준인 재적의원 3분의2를 훌쩍 뛰어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여야는 대화록 원본과 부속자료 열람․공개에 합의했다.

한때 국정원 공개본의 진위 논란과 국정원의 ‘대화록 내용은 NLL 포기’라는 성명,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 발언’에 따른 새누리당의 국회일정 거부로 파문이 일기도 했지만 여야는 ‘면책특권을 활용한 최소한의 공개’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 7월 15일 국가기록원을 찾아 열람에 들어가게 된다.

5. 결말

대화록 원본 공개는 대화록 정쟁을 끝내기 위한 여야의 출구전략이었다. 이미 정국의 무게중심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로 옮겨간 상황. 지난 대선의 공정성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여야 모두 화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사태는 뜻밖에도 누구도 짐작치 못했던 ‘대화록 실종’으로 번졌다. 여야 열람위원단이 예비열람 이틀, 추가검색 나흘 등 총 엿새동안 전문가와 참여정부 당시 관계자들까지 동원해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대화록 원본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결국 여야 열람위원단은 7월 22일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대화록 공방은 사초폐기 논란으로 불러왔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의원에게 ‘책임을 지라’며 칼끝을 겨눴고, 대화록 원본 공개를 외쳤던 문 의원은 자신에게 돌아온 정치적 부메랑에 “어차피 새누리당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이 진본이라는 입장이었으니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사실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리 없다"며 이제 ”NLL 논란을 끝내자“고 대응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이 구차한 변명만 한다“고 비판했다. ”비겁하고 졸렬하다“고 원색적인 비난까지 퍼부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의심을 눈길을 보내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민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7월 26일 나란히 NLL 관련 일체의 정쟁 중단을 선언했다.

6. 또 다시 위기

그러나 대화록 블랙홀의 수명은 다하지 않았다. 지난 2일 검찰이 대화록 실종사건 중간발표로 다시 정국의 전면으로 툭 튀어나왔다. 공교롭게도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이 불거진 시점이다.

검찰은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이관되지 않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가져갔던 이지원(e-知園) 사본에서 대화록 초안을 삭제한 흔적과 최종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즉각 “연산군도 하지 않은 사초 폐기”라며 ‘문재인 책임론’을 두달여 만에 꺼내들며 다시 포격을 시작했다. 원내지도부부터 열람위원, 당직자들에 이르는 총공세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발표의 해석과 시점 논란을 지적하면서 문재인 방어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의원도 지난 4일 “확인된 것은 대화록은 있고 NLL 포기는 없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계파 갈등이나 분화 가능성에 대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7일부터 대화록에 관여한 노무현정부 인사들을 본격적으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지난달 16일 국회 3자회담 결렬 이후 민주당의 원내외 병행투쟁이 지속되고 정기국회도 말뿐인 정상화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대화록 공방이 또다시 정국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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