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국가 우크라이나에서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무산에 항의하는 야권 시위가 3주 이상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시위 강경 진압 책임자들을 해임하며 야권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나섰다.
시위과정에서 체포됐던 야권 지지자 가운데 일부도 법원 판결로 풀려났다. 이런 가운데 지방에서 올라온 야누코비치 대통령 지지자 수만 명은 이날 반정부 시위대 근처에서 EU와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한 정부 결정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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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누코비치 대통령, 화해 제스처 =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야누코비치는 이날 대통령령을 통해 지난달 30일 반정부 시위 강경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국가안보·국방회의 부서기 블라디미르 시브코비치와 수도 키예프 시장 알렉산드르 포포프 등을 해임했다. 키예프시 경찰청장 발레리 코략과 부청장 표트르 페드축 등도 해임됐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이들이 월권에 해당하는 명령을 내려 야권 시위를 강경 진압한 책임이 있다는 검찰의 청원을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 또 이날 지난달 시위 과정에서 체포됐던 야권 지지자 9명이 법원 판결로 석방됐다.
이같은 조치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하루 전 전직 대통령들과 야권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범국민 원탁회의에서 시위 강경 진압 책임자 처벌과 체포 야권 지지자 석방, 시위 강제 진압 자제 등을 약속한 뒤 전격적으로 취해졌다.
앞서 지난달 30일 키예프 시내 '독립광장'에서 야권 지지자 약 30만명이 EU와의 협력협정 무산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 경찰과 특수부대원들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대 약 30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시위 주동자 10여명을 체포해 조사를 벌여왔다.
야권은 그동안 시위 강경 진압 책임자 처벌과 체포 인사 석방 등을 정부에 대한 주요 요구 조건 가운데 하나로 내세워왔다.
야권은 아직 대통령의 화해 조치에 대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하루 전 원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야권의 요구 조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바 있어 당장 시위 중단 등으로 화답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 친정부-반정부 시위대 세력 대결 = 한편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화해 조치가 발표된 이날 키예프 시내에선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가 나란히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팽팽한 긴장이 조성됐다.
경찰 추산 약 6만명의 친정부 시위대는 수만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모여있는 '독립광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유럽광장'에서 대통령 지지 시위를 벌였다. 친정부 시위대는 주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 올라온 광원과 국영기업 근로자, 공무원 등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버스와 트럭, 병력을 동원해 두 시위대 사이를 가로막아선 가운데 시위대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친정부 시위대는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을 철없는 학생들과 실업자들이라고 몰아세웠고, 반정부 시위대는 지방에서 올라온 친정부 시위 참가자들을 돈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일부 반정부 시위대는 경찰 차단벽 부근에 접근해 "동부(정부 지지 지역)와 서부(야권 지지 지역)는 단결하라", "돈바스(동부도시)여 동참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반면 러시아와 접경한 동부 루간스크주(州)에서 올라온 한 광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도 EU와의 통합을 반대하지 않지만 걸인의 입장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해야 한다"면서 "독립광장의 야권 시위대는 우리가 내일 당장 유럽의 지원을 받아 유럽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통령 지지자들과 야권 지지자들이 나란히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한때 시위대 간 충돌 위기가 고조됐으나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권의 무기한 시위에 맞서 친정부 시위대도 유럽광장에 수십 채의 천막을 설치하고 시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선언해 긴장 분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